한국일보

한 이민가정의 비극은 우리 이야기

2007-04-2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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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자(의사)

이민의 삶에서 가장 힘든 것은 아이를 키우고 교육시키는 일이다. 이민 1세인 부모들은 수영의 기초연습을 하지 않은 아이들을 강물 속에 집어던져 버린다. 물에 빠지면 익사하고 살아남지 못한다는 생존의 본능으로 아이들은 필사적으로 물에 떠서 헤엄쳐 나아가는 팔과 다리의 움직
임의 운동감각을 스스로 익힌다. 그래서 아이들은 외롭게 떠있는 소수민족의 작은 섬에서 무서운 추진력으로 강을 가로질러 주류사회의 거대한 땅으로 건너간다.

나의 아들이 아이비리그 대학과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기까지 나는 헤엄칠 줄 모르는 아이를 깊은 강물 속에 던져버리지 않았던가?
버지니아 공대의 유혈폭력 공포영화같은 참극을 접하면서 아이를 돌볼 겨를이 없었던 전쟁과도 같던 지나간 시간들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집단의식의 죄악감이라기 보다는 이민자들이 같이 타고 가던 배가 바다 밑바닥으로 침몰하는 듯한 절망감이었다. 어느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한인학생이 저지른 범행이라고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이성적인 머리로 판단하는 시각이 아니고 이민자의 부모로서 온몸이 떨리는 전율을 가슴으로 느끼는 참극이었다.


학교 교실에서 일어난 총격사건은 비디오 스크린에서 총알을 맞고 모형인간들이 쓰러지는 게임을 현실에서 사격 훈련하듯이 재연하였다.
한 지도교수가 TV 인터뷰에서 늘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던 조승희의 검은 안경 너머로 그는 울고 있는 것 같았다고 하였다. 공포에 떨며 동굴같은 어둠 속에서 짐승처럼 울고 있는 아이의 눈물을 아무도 닦아주지 않았다. 정신건강 진료진과 부모, 학교와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지 않았
기 때문이다.

긴급상담(crisis intervention)이라는 적극적인 대응이 있었다면 그의 무섭게 타오르는 분노와 망상의 불길을 끌 수 있었을 것이다.
주류 언론은 버지니아 총기사건을 총기문제, 정신질환 병록의 프라이버시 등에 초점을 두고 있다. 또한 미국언론은 한인들이 집단의식으로 죄악감, 수치감을 느끼고 한인들에 대한 불이익을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기사를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주류언론의 사설자들은 민감한 인종차별이나 편견에서 벗어난 지식인들로 공정하고 냉철한 세련된 제스처다. 하지만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소수민족에 대한 혐오감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는 할 수 없다. 미주 언론은 소수민족의 가정의 불행을 파헤치기 보다는 미국 정서에 뜨거운 쟁점이므로 떠오르는 총기사건을 더욱 확대시켜 부각시키고 있는 것 같다.

서부개척 영화에서 바람보다 더 빠르게 달리는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말 안장에서 백인들이 쏜 총에 맞아 굴러 떨어진다. 미국 정서에 총은 용맹, 정의, 승자, 자기 보신용의 상징이다. 미국인들의 뿌리깊은 의식 속에 폭발력을 지닌 총기의 무기는 그들의 힘의 상징인 분신이다.총기 규제가 아무리 강화되어도 총기 옹호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거대 미국땅에서 총성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한인 이민자들은 이민사도 짧고 인구도 적은 이질문명의 충돌과 벽에서 힘들게 사는 특수한 조건과 배경을 지니고 있다. 이런 취약점을 갖고 있는 소수민족인 한인들이 공동운명체의 틀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산산조각난 한 이민가족의 비극은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이야기다. 이민 3세들인 꿈나무들이 미래를 향해 달리고 있다. 흐르는 시간은 피로 물들었던 이민 초기의 참극을 희석시키며 강물같이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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