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버지니아텍 사건:일어탁수(一魚濁水)

2007-04-2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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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일(우정공무원)

한 마리의 고기가 물을 흐린다는 뜻으로 한 사람의 잘못이 여러 사람에 그 해를 입게됨을 비유하는 말이다. 동아리나 모임단체 및 관광지에서 도덕적으로 대의를 벗어나 제멋대로 행동하여 단체 체면이나 일행들의 인격에 손상을 주었을 때 그를 가리켜 일어탁수 격이라 말들 한다.

지난 해 뉴저지 거주 모 탈북자는 한국정부가 인도적인 면에서 입국시켜 정부의 각종 지원과 혜택을 주었으나 그 은혜와 국민들의 온정을 잊고 배은망덕한 배신행위라는 것을 알면서 미국에 망명신청을 하여 한국인들의 위상과 자존심을 추락시킨 것을 두고도 일어탁수로 비유했다.그런데 지난 16일 버지니아 블랙스버그에 있는 버지니아 공대에서 발생한 한인 조승희(23.영문과 4년)씨의 총기 참사사건은 1997년 이래 11번의 미 교내 총기 난사사건 중 최대 희생자(32명, 본인 제외)를 낸 사건으로 미국내는 물론 세계를 놀라게 한 뉴스를 들으면서 범인이 아시안이라 했을 때 중국인이나 동남아인이겠지 했다.


솔직히 한국인일 것이라고는 0.1%도 생각치 않았다. 그러나 이 작은 기대수치는 하루만에 물거품처럼 산산조각이 나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류방송에서는 32명의 무고한 사람을 살해한 자가 한국인이란 실명까지 거론 확인되면서 너무나 부끄럽고 속이 아파 아무도 다니지 않는 집앞 길을 보기가 무서웠다. 혹시나 이웃집 거주민들이 당장 튀어나와 우리집 창문을 쳐다보면서 잔인한 코리안이라 손가락질 할 것만 같았었다.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필리핀 직원이 총기살해사건에 대해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서 범인이 Mental Disorder(정신이상자)라고 씁쓰레한 표현을 하는데 왠지 미안하면서 한편 부끄럽고 참담했다. 쉬는 시간에 인도 여직원도 같은 질문을 한다. 인도인이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한국인이기에 이들은 이유가 궁금하고 알고 싶었던 것이다. 여친 에밀리를 처음 살해한 것으로 보아 치정관계로 보는 듯 했다. 듣고만 있자니 얼굴이 달아오르고 원인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대답을 피하기가 어려워 궁색한 답변(당시)이지만 가해자는 Mental Patient라는 말로 모면했다.

평소 농담을 하고 지낸 중국 직원은 생김새가 비슷해 팔이 안으로 굽히는지 훨씬 부드러운 내용을 주고 받았다(내심은 알 수 없지만).
20일은 70년대 초 미 육군으로 해외복무시 본국 대구에서 군생활을 했던 존슨이란 미국직원이 여러 직원이 있는 곳에서 큰 소리(평소 목청이 크지만)로 버지니아대학에서 권총으로 살인한 자가(동영상처럼 양어깨 들어올리며) South Korean인데 알고 있느냐고 송곳 질문을 한다. 알고 있다 하니 “Korean’s Bad Man” 한다. 분명 사실이지만 화가 날 수 밖에 없다. 이열치열식으로 “Not me, only him” 그러면서 서로 웃어버렸다.
이 직원과도 짙은 농담을 하면서 10년 이상 같이 근무했기에 악의는 없는 대화였다는 것을 알지만 최대의 참사사건의 범인이 한국인이고 보니 직장이지만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미국인들의 사건 관심이 예상외로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15년 전(1992.4.29)에 일어났던 LA 폭동의 단초가 되었던 흑인 로드니 킹에 경찰 구타사건이었지만 불똥이 한인타운 및 한인사회로 번져 한인들이 대부분 입주 운영하고 있는 플리마켓(inside)이 타겟이 되어 방화로 잿더미로 변하여 천문학적인 피해액을 입혔고 한인들의 사상자까지 있었음도 기억해야 된다. 또한 주류 언론매체들은 본 사건이 미주한인들과 무관하다는 식으로 보도 방향이 잡히고는 있으나 너무 안이하게 대처하는 것도 금물이다.

만에 하나, 미주지역에서 한국상품 불매운동이나 인종간 폭력사건(장례 이후)같은 우려등이 예상될 수도 있으니 각 지역 재외공관은 비상근무 체제로 격상하고 관내 한인단체들과 긴밀하게 대책을 수립하여 지혜롭고 슬기롭게 대응, 비극적인 이번 참사 사건의 충격이 최소화하고 빠른 시일 내에 유가족을 비롯, 주류사회와 한인사회가 평상심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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