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조승희 사건 무엇을 일깨웠나

2007-04-2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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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지난 주 발생한 버지니아 공대의 총기 살인사건은 우리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우리 모두가 그 충격에서 헤어나자면 아마도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 한창 꿈에 부풀어 학업에 열중하던 젊은 학생들이 같은 학교의 학생이 쏜 총에 무참히 목숨을 잃은 이 사건은 가장 안전하고 진리탐구의 전당이어야 할 학교도 이제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님을 다시 한 번 보여 주었다.

더욱이 이 사건이 우리의 자녀요, 형제 같은 한인 대학생의 손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사실로 인해 우리 모두가 긴장하며 지낸 일은 다민족이 더불어 살아가는 이 곳 미국에서의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었다. 그리고 자녀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우리가 흔히 추구하는 돈이나 가게보다도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만들었다.우리는 이번 사건의 주인공 조승희의 이 사회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비디오테입에서 생생히 볼 수 있었다. 이 사회와 사람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그의 분노에 찬 눈매는 그가 얼마나 이 사회에서, 학교에서, 친구들로부터 소외당하고 거절당하고 비웃음을 당했는가를 잘 읽게 한다.


심리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분노는 거절당함 또는 조롱당함, 멸시 당함에서 온다고 한다. 애인에게 사랑이 거절당한 사람이 애인에게 분노를 느끼는 일, 직장에서 거절당하거나 좋아하는 친구, 주위 사람들로부터 거절을 당할 때 사람들은 분노를 일으키게 된다. 조승희는 학교에서 말이 없고 수업중에도 영어 발음을 제대로 하지 않아 조롱당한 적도 있었고 늘 외톨이로 지내 그의 마음의 병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누구하나 그의 아픔과 외로움을 깊이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알려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의 병은 점점 더 깊어만 갔고 정신적 아픔이 분노와 적개심으로 납덩이처럼 똘똘 뭉쳐져 갔다. 그런데도 조승희의 가족들은 그가 이런 사건을 저지르게 될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담당 교수가 한 말에 의하면 그처럼 말이 없는 학생은 처음 보았고 또 제출한 희곡마다 섬뜩할 정도의 잔인성이 내포돼 있는데도 어떻게 그토록 가족들이 몰랐단 말인가?

좀 더 가족들이 깊이 그의 학교생활과 일상생활, 정신세계에 관심을 가졌더라면 이와 같은 불상사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희생당한 무고한 젊은이 32명의 목숨과 가해자인 조승희의 가엾은 영혼을 생각하면 안타까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현실이 이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이름 있는 학교에서 무조건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만 만족하고 있을 것인가. 아무런 보살핌과 사랑, 그리고 관심도 쏟지 않고 무조건 사회에 대한 적응력과 사람들과 더불어 지내며 학교나 사회에서 인정받는 자녀들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이다. 더욱이 이번 사건은 단순히 총기로 사람을 죽인 사건만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교육적, 구조적인 모순의 미국사회의 문제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학교교육 시스템과 정책의 부조리를 환기시켜 주었고 총기문화에 대한 정치적인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온갖 폭력과 잔학함이 내포된 컴퓨터 게임에 노출된 사회 병리현상의 문제점도 지적됐다. 특별히 이번 사건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미국사회가 보여준 성숙함이었다. 아마도 한국에서 미국인 학생이 만일 이런 일을 저질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노근리 마을에서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여중생 미선이가 죽었을 때 한국인들이 야단 법석했던 것을 기억한다.

성조기를 불태우고 반미, 미군철수를 부르짖으며 온 나라가 들끓었다. 이런 면에서 보여주는 미국인의 사건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태도, 분석력과 판단력, 그리고 사건에 대처하는 차분함은 우리도 배워야 할 것 같다. 이제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도 이 사건을 일으킨 비극의 주인공 조승희의 아픔을 이해해야겠다. 그가 저지른 죄는 밉더라도 그를 용서해야 하지 않을까. 그는 자기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는 정신질환의 철저한 희생자였다.
어려서부터 그는 가난 속에 시달려야 했고 미국에 이민 와서도 색다른 사회와 문화 속에서 갈등을 일으켰고 인종차별적인 요소에 짓눌려서 살았다. 그런 차원에서 조승희 사건은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한 이민자의 아픔이자 고통의 산물이었다. 그의 죄는 어쩌면 그가 그렇게 되도록 놔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전 미국이 놀라고 한국인 모두가 가슴을 쓸어내린 이번 조승희 사건은 우리에게 정말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으며 특히 증오와 용서의 차이가 얼마나 극명한가를 일깨워 주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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