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1+32

2007-04-2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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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석(정신과전문의)

지난 4월 16일, 버지니아 공대에서 있었던 총격사건이 세상을 경악하게 한 끔찍한 비극이었음은 되풀이 할 필요가 없다. 만물이 소생하고 꽃들이 봉오리지고 피어나는 화창한 봄날, 학문의 봉우리와 꽃을 피우려던 아름다운 젊은 목숨 서른 둘이 무참히도 사라져버렸다.이런 비참한 행동을 저지른 주인공은 그 또한 학문의 꽃을 피우기 직전 23세의 졸업반 학생이었다. 그는 여덟 살 때 미국에 이민온 한국 태생의 학생이다.

나는 이 학생을 만나본 일도 없고 치료해 본 일도 없다. 정신없이 라디오방송을 듣고 넋을 잃고 TV방송을 보면서 느끼고 생각한 바로는 이 학생이 심각한 정신병을 앓고 있었음은 분명하다.정신과 전문의들은 거의가 망상병의 피해형이거나 정신분열증의 피해망상형인 것으로 의견이 일치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여러가지로 종합해 볼 때 후자, 즉 정신분열증의 피해망상형으로 본다.


이 사람 저 사람들이 누가 피해자인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물론 서른 둘의 꽃다운 목숨이 직접 희생자임은 말할 것도 없다. 어떤 한국의 언론만평은 한국이 서른 세번째 희생자라고 하였고 또 어떤 사람은 우리 모두가 희생자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표현들은 다만 간접적인 희생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목숨을 잃는 희생이 가장 크고 궁극적인 희생이라고 본다. 주미 한국대사는 목숨을 잃은 32명의 영혼을 위하여 우리 동포들이 32일간 단식기도를 하자고 제안했다고 들었다. 범행을 저지른 사람이 한국에서 이민 온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한국 동포가 모두 속죄의 애도를
표해야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또 미국 전역의 한인사회에서 학교, 교회, 성당을 중심으로 32명의 희생자와 그 유족들을 위한 추모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이번 버지니아 공대 총기사건의 가장 큰 희생자는 다름 아닌 가해자 조승희 학생이라는 사실을 모두 망각하고 있다. 그도 목숨을 잃었다. 누가 그의 가해자인가? 남을 죽였기 때문에 그는 같은 총으로 자기 자신을 쏘아 죽여도 희생자가 될 수 없는가? 내가 보기에는 이 학생이야말로 가장 큰 희생자이다.이 학생의 가해자는 누구인가? 첫째로 그가 가지고 있던 정신병이다. 앞서 내가 보기에는 정신분열증의 피해망상형이라고 했다. 이 병은 남이 나를 의도적으로 해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 병적인 상상으로 만들어진 가해자에게 끔찍한 짓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정신병은 환경, 즉 주위나 학교, 가정 등의 문제로 오는 것이 아니고 주로 유전적, 선천적 인자 때문에 발병하는 것이다. 본인의 고의적인 의지나 생각과는 관계가 없다. 때문에 한국사람이라는 것도 연관이 없다.

이 병은 어느 민족, 어느 종족에서나 비슷한 비율로 나타난다. 이 병의 특징은 망상, 환청, 감정의 황폐, 생각의 분열 등이며 본인은 이런 증상등을 컨트롤 할 수 없는 것이다.조군의 두번째 가해자는 병을 일으킨 요소가 아니라 자기의 망상을 행동으로 옮길 때 사용한 치명적인 총격 방법을 택하게 한 요소이다. 그것은 미국의 사회 문화적 환경이다. 미국은 세계
적으로 무기의 천국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만큼 총기를 아무나 쉽게 구할 수 있고 또 총기로 인한 살상이 수도 없이 일어나고 있는 땅이다. 영화, 텔레비전, 비디오, 컴퓨터 등에는 살상이 난무하나 아무도 이를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이것을 보고 쉽게 모방할 수도 있으며 특히 피해망상 같은 정신병이 있는 사람들은 이것을 쉽게 응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사회문화적 환경의 문제로 들 수 있는 것은 미국이 너무나 물질주의에 치우쳐 사람들의 마음이 점점 본능적인 섹스, 폭력, 돈에 집착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부수해서 윤리, 도덕적, 인도적인 교육이 전혀 행해지지 않고 있으며 자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검토할 수 있는 훈련이 전혀 안되고 있는 점도 문제가 된다.이번 사건의 희생자는 모두 서른 세 명이다. 가장 큰 희생자는 조승희 군이라는 것을 우리는 깨닫고 그의 영혼을 위해서도 동시에 애도와 추모의 정을 보내야 되겠으며 그를 죽인 가해자 ‘정신병’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서 정신과 상담하는 것에 대한 편견과 기피를 타파하고 이 미국사회의 병폐를 바로잡도록 다 같이 노력해야 될 것이다. 4월 16일, VT, 1+32를 다시 부르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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