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슬픔 딛고 다시 일어나소서

2007-04-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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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목회학박사)

아지랑이에 피가 맺혀 있다.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에도 피가 맺혀 있다. 흐리던 날씨가 활짝 개인 날 화창한 햇빛 속에도 피가 맺혀 있다. 빛 속에 드리워진 핏빛은 더욱 발갛게 물들어 빛을 붉힌다. 온 세상이 핏빛으로 붉게 물들어 있다. 하늘이 노여워 아지랑이에 피를 맺히게 했을까,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에도 피를 맺히게 했을까.

우주보다 더 귀한 30여의 목숨들이 정신병자 같은 한 사람의 총구에 생명을 잃은 지 어언 몇 날. 온 지구가 슬픔에 쌓여 가신 넋들을 기리고 있다. 망연자실(茫然自失). 푸르른 꿈을 안고 학문에 열중하던 꽃다운 나이들. 아무 죄도 없이 아무 잘못도 없이 못다 핀 꽃잎들은 스르르 떨
어져 망혼(亡魂)이 되어 흩날린다. 유대인 교수. 자신의 몸으로 제자들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고 그 틈에 제자들을 살려낸 그 혼은 또 어디로 갔을까. 꽃 같은 제자들이 총구 앞에 벌벌 떨 때 그는 몸을 날려 제자들을 감싸 안았다. 스승의 길. 진정 제자들을 사랑한 그의 길은 영원히 빛나리. 허나 그의 몸 하나는 두 자루의 총구 앞을 진정 가로막지는 못했다.


졸지에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잃어버린 부모와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를 잃어버린 형제와 자매들. 얼마나 속이 상하랴. 아니 상하다, 상하다 속이 문드러지랴. 눈에는 눈물이 마르고 속은 거멓게 타서 숯검정 같으리.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는 망혼의 넋을 어떻게 위로하랴. 청천벽력(靑天霹靂). 푸른 하늘에 번개가 떠서 아들과 딸들을 잃었으니 그 심정 어찌 위로할꼬. 카인이 아벨을 죽이던 날. 인류의 살인이 처음 시작됐다던가. 형이 동생을 죽인 그 날이 하늘의 노여움을 어찌 피할 수 있었단 말인가. 어찌하여 하늘은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말리지 못했단 말인가.

진정 인간은 악의 꽃이련가. 아님, 꽃 속에 피어난 악이련가. 광야에 쫓겨난 이스마엘의 저주가 인간을 이토록 저주스럽게 할 줄이야 그 누가 알았으랴. 산 사람은 살아야지. 가신님들 넋 기리고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는 이런 악의 꽃이 피어나지 않게 해야지. 강 건너 물 보듯 하던 우리네도 이제는 더 이상 이런 악이 저질러지지 않게 최선을 다해야지. 그 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 그 넋들의 혼이 망혼이 안 되도록 살아남은 우리네
무엇을 해야 하나. 자유의 나라 이 땅에 수 없이 널려 있는 총구들. 그 총구들을 막아야지. 강도를 막으라는 총구이지 죄 없는 사람들을 향하라는 총구 아니지. 언제 그 총구가 또 나에게로 향할지 그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총구는 진정 자유의 나라 이 나라의 표상인가, 아님 이 나라의 저주인가. 총기규제는 가신님들이 원하는 진정한 바램이겠지.

왕따도 줄여야지. 내가 너를 왕따 시키면 너는 나를 또 왕따 시키고. 반복되는 왕따는 총구를 사들이려 하겠지.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이 땅이 되어야. 서로 감싸야 할 이 땅이 되어야. 내 이웃을 나처럼 돌아보는 이웃이 되어야. 너무 바빠 나도 돌아보지 못하는 주제에 또 어찌 남을 돌아보랴만, 그래도 돌아보아야 되겠지. 먹을 것이 너무도 풍성한 이 나라. 입을 것이 너무나 풍성한 이 나라.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들어와 살려고 하는 이 나라. 이 나라에 만연한 그 풍족함이 사람을 사람 되게 못하는 것은 아니겠지. 물질이 풍족하다고 정신마저 풍족한 것은 아닐 텐데. 풍족한 물질문명 속에 점점 메말라가는 이 나라의 정신세계는 되지 말아야겠지.

모든 것이 풍족한 나라, 이 땅이지만 그래도 빈부의 차이는 극에서 극을 달리고. 가난한 자들의 저주스런 한이 오늘도 하늘을 찌르고 있으니. 골고루 나누어 다 같이 잘 먹고 잘 사는 나라로 탈바꿈 되면 안 될까.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나라인데 그 무슨 소리냐 하겠지만, 총구를 향한 그 저주스런 눈빛이 우리네에게 주는 그 섬뜩함은 빈부의 차이에서도 나왔겠지.

다시는 이런 저주가 내리지 말아야. 다시는 죄 없는 사람들이 넋 없이 쓰러지는 날은 오지 말아야. 이 땅에 남아 있는 우리네들이 또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이여. 하늘이 노여워하지 않게 할 것이여. 서로서로 도와가며 살 것이여. 왕따도 없게 할 것이여. 부자와 가난한 자가 다 같이 잘살게 할 것이여. 총구도 강도를 막는 총구가 되게 할 것이여. 총기도 규제되게 할 것이여. 화창한 봄날의 햇볕 속에 다시는 핏빛이 스며들지 않게 할 것이여. 가신님들의 혼이여. 하늘에 평안히 잠드소서. 남은 가족들이여 슬픔을 딛고 다시 일어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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