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저주와 원망의 눈길

2007-04-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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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일(전 MBC 아나운서)

희대의 총기난사 사건으로 미주 한인사회가 사건의 진상과 더불어 크나큰 상심감에 빠져있다. 범인이 한국인이라는 사실로 어느 때 보다도 침체된 분위기가 역력하다. 한국계 미국인의 이미지 상실에다 거기서 파생되는 정신적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이 사건은 언론의 직설적 표현대로 학살(massacre)이다. 천륜과 인륜을 배반하고 스스로를 파괴한 이해받지 못할 비극이다. 가공할만한 이 사건의 심각성은 그 잔인성에 있다. 범인은 자신의 부모에 대한 동정할 공간마저 없애버린 이기적이고 독선적이며 파렴치한 흔적만을 남겼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미치게 했을까?그의 광란에 미국도 한국도 전세계도 할 말을 잃었다.


세상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범인의 범행 동기에 분노하고 있다. 범인은 범행을 위하여 두 차례에 걸쳐 두 자루의 권총을 구입했다. 총을 구입하면서도 법적인 필요한 조치를 취할 정도로 차분하고 냉정했던 것 같다.
운명의 4월 16일, 한 주일이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의 참극은 2시간30분 간격으로 피로 얼룩진 것이다.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계획된 테러를 방불케 했다.사건이 발생하자 범행 동기에서부터 범인의 행적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 정황 파악에 이르기까지 온 세상이 시끌벅적하다. 범인의 스토킹 경력, 범인이 남긴 엽기적인 희곡작품, 부자집 아이들에 대한 범인의 분노 등 만으로 이 비극적 사건을 설명하기엔 충분치 않다. 치정에 의한 단
독범행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토마스 제퍼슨 대학의 닐 케이 정신분석학 교수의 분석을 보자. 연쇄살해범의 경우 마약중독자와 같이 그들의 행동에 쾌감을 느끼지만 대량살상범은 쾌감을 찾는 유형이라기 보다 우울하고 화가 나 있으며 스스로 모욕을 당하고 있다고 느낀다는 것이다.범인은 이미 2005년 법원의 명령으로 정신적 문제가 불거졌음에도 불구하고 일이 저 지경에 이르기까지 방치되었다.

너무 무관심한 건 아닌가? 단독 범행 치고 너무나 충격적인 이번 사건과 오버랩되는 사건이 떠오른다. 오래 전 한국에서 발생한 경남 의령 총기 난동사건이 그것이다. 한 사람의 범인이 51명을 살해한 끔찍한 사건이었다. 당시 패악무도한 한 사람의 학살행위를 놓고 한국인은 과연 잔인한 민
족인가 라는 물음이 제기되기도 했다.보편적으로 감성적인 사람은 쉽게 과격하고 화가 나면 파괴적 성품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이판사판으로 걸고 덤비면 남아나는 게 있겠는가? 이런 사고방식이 잔인한 인간의 전형인 것이다.

세계 여러 민족이 모여 사는 미국에서 살아가는 한인들은 소수민족이다. 이번 사건이 터지자 미주 한인들의 불안한 정서가 예사롭지 않다. 자격지심 같지만 웬지 주변이 신경이 가고 누군가 금방 시비를 걸어올 것만 같은 예비 불안기감이 느껴진다.범인이 한국 영주권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볼멘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들려온다. 소상인들로 중심을 이룬 한인상가에서는 벌써부터 매기가 덜어진다는 등 전전긍긍하는 모습도 엿보인다.
이번 사건은 모두가 피해자다. 어느 누구도 이번 사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미망에 사로잡히게 한다. 이번 사건은 저주와 원망의 시선이 집중될 소지가 다분하다. 한인들에게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미주 한인들에 있어 지금은 어느 때보다 엄숙하고 경건해야 할 때다. 이런 경우에는 차분하고 의연해야 한다. 자숙하는 분위기가 상책이다. 한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무겁게 생각되더라도 한국인이기 때문에 극복해야 할 때다. 한인들을 바라보는 눈길이 부담스럽더라도 한국인이기 때문에 감당해야 할 때다. 그것만이 우리들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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