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인에 대한 편견 없기를

2007-04-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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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진(변호사)

버지니아 공대 학살사건의 충격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슬프다, 충격적이다 라고 묘사해도 가깝지 못하다. 한국학생이 가해자라는 사실을 안 이후 내 정신이 아니다. 일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가슴속에 큰 상처가 생긴 기분이다. 오늘 조간신문에 실린 희생자 32명의 프로필 난을 읽기 시작하다 곧 중단하고 말았다. 계속 읽을 수가 없다.

가해자 조군은 소위 문제아요, 외톨배기로 표현되고 있으며 그의 학과목 글 중에서 괴벽한 내용 때문에 담당교수가 학교당국에 상담 의뢰를 요청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학교 내의 부자 아이들(rich kids)과 소위 잘난 체 하는 학생들(charlatans)을 증오하는 노트를 남겼다고도 알려져 있다.
가해자 조군은 정신적으로 건전하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의 대학생들은 전반적으로 부자가 아니다. 학비를 여러 곳에서 보조받거나 융자를 해서 공부를 한다. 조군이 생각하기에 잘난 척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자기의 의견을 펴고 주장하는 과정이 미국 교육이다. 필자도 미국에서 법대와 신학교를 다니면서 경험했던 대목이다. 법대는 물론이지만 신학교에서도 토론이 교과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잘난 체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 대학 교육의 중요한 한 과정이다.세 자녀를 양육하면서 어려운 일들이 적지 않았다. 성인이 되었지만 지금도 걱정이 된다. 나는 아이들에게 학교 공부보다 즐거운 학교생활을 강조했다. 꼭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이 외톨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작년 6월에 막내아이 결혼식에서 5명의 신랑 들러리 중에 한 흑인청년이 포함되었다. 하객들은 신랑 신부 친구들 제외하곤 모두 한국사람들이었다. 우리 부부는 결혼식 후에 고등학교 농구부 친구 제프를 들러리로 세운 것을 칭찬해 주었다.어린 아이들의 탈선을 막는데는 무엇보다도 부모들의 사랑과 대화가 필수적이다. 아이들에게는 숨겨진 사랑보다 겉으로 표출되는 사랑이 필요하다. 서로의 대화가 잘 되어야 한다.

우리 부모들의 문제점은 아이들과의 대화 소통이 부족한 점이다.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부모들은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시기다. 그래서 직장이나 사업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되어 자연적으로 아이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적다. 특히 우리 이민자들은 더욱 그렇다. 우리 부부도 둘 다 일을 했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풍부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이가 많고 지혜도 조금 생겨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4월 18일자 한국일보 오피니언 페이지에 보니 “이번 사건을 슬퍼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좀처럼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하는 글을 보았다. 맞는 글이다. 정말 우리 한인사회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답이 없다. 솔로몬도 해결하기 힘든 어려운 문제다. 그런데 같은 날짜 신문에 총영사관에서 한인 지도자 70여명이 모여 긴급 대책모임 중에서 모금운동을 해서 피해자 가족을 돕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보도하고 있다. 또 같은 날짜 1면에서 성금을 모아 유가족에게 전하자는 한 경제단체장 견해도 보도하고 있다.

이것은 안된다고 생각한다. 돈으로 우리 마음을 전하려고 한다면 도리어 역효과를 낼 수 있다. 미국인들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그들을 돈으로 모독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유가족들은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아니다. 지금은 조용히 관망하고 희생된 학생들의 명복을 빌고 동요하지 말고 당당하게 자기의 맡은 일에 충실해야 한다.그러나 각 종교단체는 희생자와 그들 가족을 위한 추모예배를 드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각 대도시 교회가 연합해서 대규모 추모예배를 드리는 것을 제창하고 싶다. 이민 교회가 각 교회의 성장에만 과민하고 교회간에 경쟁하는 모습은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다. 특히 이민자를 대상으로 사역을 하는 우리 이민교회가 이 중대한 시점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심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정부나 각 사회단체 보다는 종교계의 능동적 움직임이 요구된다. 그러나 다시 얘기지만 절대로 희생자를 위한 모금 행위는 도리어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잘못 생각하면 돈으로 모든 문제를 처리하려고 한다고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한국사람이 부자요, 잘 사는 나라 사람이다”라고 하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한국사람은 좋은 사람들이다”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한다는 말을 나는 자주 하는 편이다. 나는 스스로 양적
부유 보다 질적으로 향상된 생활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편에 서있는 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 청년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세계 사람들 눈에, 특히 미국인들의 눈에 한국인에 대한 편견이 제발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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