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 어찌해야 할까

2007-04-1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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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재(전 은행인)

버지니아 총격사건을 보아 인간이 이렇게까지 잔혹할 수 있을까 경악을 금할 수가 없다. 정신병자가 아니고서야 이런 끔찍한 일을 어떻게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분노가 아무리 하늘을 찔렀다 해도 두 사람씩이나 귀한 목숨을 해쳤고 상당한 시간이 흘렀으면 인간인 이상 분기도 어느 정도 사그러들을 뿐 아니라 인간 최악의 범죄에 당황해서 후회와 반성도 있을 법한 일이건만 장소까지 옮겨가며 무고한 사람들마저 무참하게 살륙한 자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가 아니라 애초부터 인간이 아닌 악귀였다고 할 수밖에 없다.

원래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사건의 추이를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경위야 어떻든 하늘과 땅 어디에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최대의 죄악이다.
‘모진 놈 곁에 있다 벼락 맞는다’는 말이 있지만 생떼같이 젊은 수 십명의 원혼들을 어떻게 달래며 꽃보다 예쁘고 황금보다 귀한 자녀들을 잃은 그들의 부모나 가족들을 무슨 재주로 위로하느냐 말이다.이 시각 현재 재미 한인들 모두 이 악몽의 후유증이나 역작용을 걱정하지 않는 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우선 X같은 정치판에서 절대생존을 위해 선의의 경쟁을 하는 이들도 많지만 황금 만능에 배타적 이기심으로 너 죽고 나 살자는 필살 경쟁의 사회병에 걸려있는 어글리 코리아를 모국으로 두고 있다는 태생적 불행을 주의깊게 반성해야만 할 것이 조승희 군의 만행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쥐구멍 하나로 뚝방이 터져 물바다가 되듯 가공할 재앙이 어디서 오는가. 한 예만 살펴보자. X구멍이 찢어질 정도로 가난해서 조선 천지 어디에나 보릿고개가 깔려있던 시절에도 제 밥그릇은 갖고 태어난다고 허기진 엄마들도 딸, 아들 구별 않고 잘만 낳았다. 쌀밥, 고기가 해롭다고 채소, 과일이나 찾는 이 시대다. 교육시키기 힘들다고 아들 하나 달랑 낳아 금이야 옥이야 기 죽여 키울 수 없다고 X인지 된장인지도 모르게 오냐 오냐로 욕심 많고 버릇 없는 개망나니로 키운다.

당그머니 혼자이니 같이 놀아줄 친구도 없고 다른 집 아이들도 처지가 비슷하니 어울릴 기회가 없다. 사람들과 어울려야 협동심도 키울 수 있고 시시비비의 판단법도 배울 수 있는데 사방을 둘러봐야 마주할 대상이 없다. 자연히 TV나 컴퓨터 게임에 탐틱하다 보니 때리고 찌르며 쏘아서 죽이는 일에 감염되고 능숙하게 길들여진다.

작가 이외수는 어느 책에선가 “나뿐인 놈”이란 말을 썼다. 아들 하나면 당연히 집안에서 자기가 왕이다. 밖에서도 왕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남과의 타협을 불허한다. 결국 나밖에 모르니 ‘나뿐인 놈’이란 정의가 성립된다. 그 말이 변해서 ‘나쁜 놈’이 됐다는 것이다.어문학상으로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일견 타당한 추론으로 공감이 가는 말이다. 나뿐인 사람은 결국 다른 사람은 안중에 없으니 무시해도 되고 때로는 죽여도 된다고 생각하는 ‘나쁜 놈’이 된 것이다.

필자가 중학교 시절 둘째 형님과 한 방을 썼다. 동서 양벽에 책상을 놓고 형과 아우가 등을 마
주하고 공부하다 평소 어른들이 권련담배를 검지와 장지 사이에 끼우고 태우시는 것이 하도 멋져 보여서 담배 한 개비를 훔쳐다가 공부시간에 태연하게 형이 보건 말건 피우다가 혼난 적이 있었다. 형이 있었기에 해야 될 일과 해선 안될 것을 배웠으니 학창시절을 남부럽지 않게 보낸 셈이다.
너무 진부한 얘기라서 떠올리기도 민망한 소리지만 공부 이전에 인간이 돼야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젊은 부모들이 머리와 꼬리를 혼동할 만큼 큰 착각을 일으켜 시궁창에 빠진 듯 허덕이고 있다.

‘나 홀로 표’ 제왕인 안하무인의 아들 앞에서 무장해제된 아버지는 ‘고개 숙인 남자’보다 더 처량한 허상, 껍데기에 불과하다. 굶어서 살이 빠지면 뱃살을 빼는 기회라도 있지, 실추된 아버지의 권위는 먹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러한 참극이 당그머니 아이 하나 낳는 출산 계
획과 별무관계 같지만 진원지를 살펴보면 뿌린대로 거둬진 오묘한 진리를 발견할 것이다. 삼가 영령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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