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특별사설/ 두 번 다시없어야 할 비극

2007-04-1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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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열정으로 빛나던 젊은 지성들이 한순간에 주검으로 스러졌다.

4월16일 버지니아텍 총기난사 사건으로 미국이 깊은 슬픔에 빠졌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도 아니고, 갱들이 날뛰는 우범지대도 아닌 학문의 전당, 대학 강의실에서 오로지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모인 학생들이 속수무책으로 생명을 잃은 비극 앞에서 미국은 할 말을 잃고 있다. 하나 같이 집안의 희망이자 자랑이었을 아들, 딸, 형제자매들을 하루아침에 잃은 가족들에게 무슨 위로의 말을 할 수 있을 지 아무도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버지니아텍 총격범이 한인 1.5세로 발표된 17일 미주 한인사회는 이중의 충격으로 망연자실하고 있다. 대학 캠퍼스에서 33명이 사망하고 30명이 부상한 처참한 사건 자체만으로도 비통함을 누를 수 없는데 그 끔찍한 범행의 주인공이 한인 학생이라는 사실 앞에서 한인사회는 문자 그대로 할 말을 잃고 있다. 한인사회로서는 일종의 정체성의 혼란이기도 하다.


이민자로서 미국사회에 힘겹게 정착하면서 한인사회는 성실한 모범 마이너리티 이미지, 혹은 인종차별이나 폭력범죄의 피해자 입장에만 익숙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참사의 가해자가 커뮤니티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한인사회로서 마른 하늘의 날 벼락이다. ‘조승희’라는 총격범의 한국 이름이 주류 미디어에서 수없이 되풀이되는 동안 한인들은 학교에서, 직장에서, 혹은 이웃에서 정신적 ‘바늘방석’을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사건 앞에서 우리가 먼저 할 일은 희생자들에 대해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는 일이다. 커뮤니티가 자숙하며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그 가족들의 슬픔에 동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조용하지만 성심을 다한 추모행사가 교계 등을 중심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제대로 키우고 있는지 이 시점에서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녀들을 똑똑하게 길러서 명문 대학에 진학시키려는 열의에 비해 인성 교육에는 너무 소홀하다는 지적이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이번 총격범이 어떤 동기로, 어떤 분노로 이런 끔찍한 사건을 저질렀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버지니아텍이라는 우수 대학에 입학할 만큼 머리는 명석한 반면 그 내면은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을 만큼 캄캄한 암흑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자녀를 사회의 바른 시민으로 길러내는 것은 부모의 첫째의무이다.

아울러 우리는 미국이라는 사회의 분명한 일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다. 우리가 이 사회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우리 후손들의 삶의 환경이 달라진다. 더부살이 하는 이방인처럼 매사를 남의 일로 바라만 볼 일이 아니다. 비뚤어진 외톨이의 손에 권총 두 자루가 쥐어지면 언제 어디서건 수십명이 살상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비슷한 사건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더 터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학교마다 금속 탐지기를 설치할 수도 없고, 캠퍼스 출입자들을 일일이 검색할 수도 없다. 가장 현실성 있는 예방책은 총기규제이다. 누구든 원하기만 하면 총을 손에 넣을 수 있는 너그러운 총기 소지법은 개정되어야 한다. 총기규제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하겠다. 빛나는 젊음들이 이렇게 무참하게 희생되는 비극이 두 번 다시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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