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문학과 한국문학인의 비극

2007-04-1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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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충남 공주 계룡산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하대리 마을의 뒷산이 우리 가족의 선산이다. 내 어머니 권 공주, 이름이 공주라서 그랬는지 공주 사람에게 시집을 가서 공주 땅에 누워 계신다. 마음으로는 매일 그곳을 가지만, 거리로는 만리가 되며 형편으로는 십 만리, 효심으로는 백 만리라 몸으로는 일년에 단 한번 거길 간다.

착잡한 생각을 품고 가는 옛 국도가 천안 삼거리를 지난다. 버드나무 늘어진 가지가 나를 보더니만 그나마 있는 힘을 다 빼고 직선으로 축 쳐진다. “어떤 사람은 절필도 잘 한다는데 너는 아직도 문학을 하느냐? 이 멍청한 녀석아!” 하는 듯 하다.천안 삼거리를 지날 때면 나는 머리를 숙이고 부끄러움을 피한다. 아니, 내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나를 부끄럽게 하는 한국 문학의 얼굴을 꾹꾹 눌러 감추고 서정을 하늘에다 유감없이 자
유스럽게 마음껏 뿌리며 휘날리는 버드나무 곁을 지나가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부러웠다. 문도(文徒)가 되었다는 것을 굳이 죄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머니 앞에서는 미안한 생각에 항상 울었다. 문학에 쏟은 50년의 열의와 열정을 하다못해 길 모퉁이에 좌판을 벌려놓고 장사에 퍼부었던들 어머니에게 사시사철 옷 한 벌씩은 해드렸을 것이다.


문학의 길을 간다는 것은 남루한 옷을 걸치고 추운 겨울의 산길을 가는 처참한 모습과 같다. 누가 한국문학을 처참하게 만들었는가? 문학인이다. 그것도 전후문학 시대를 거쳐 온 선대 문인들 가운데 문학정신을 팽개친 몇몇 사람과 탐욕에 눈이 어둡거나 심성이 약한 문인들을 잘 이용할 줄 아는 사기성 문인들이다. 문학잡지사를 차려놓고 문학 지망생의 작품을 응모받아 기성작가로 뽑아 놓았으면 거기에 해당하는 기성작가로서의 대우를 해야 하는데, 기성작가의 작품으로 잡지를 만들어 팔면서도 해당 원고료는 아예 줄 생각을 아니한다. 아니, 주지 않는 것을당연하게 생각한다.
그 뿐이랴. 발표를 해 주었으니 발표한 인사 치레를 하라고 모가지를 빼고 기다린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몇몇 사람들도 문학잡지랍시고 일년에 한번 내는 잡지에 원고를 청탁하면서 회비는 회비대로 받으면서도 출판 비용조로 얼마를 또 넣어서 보내라고 하니 이러한 청탁을 받을 때마다 문학정신이 누추해지는 것 같아 주위의 기성 작가들에게 전할 수가 없어 아예 찢어버리기가
일쑤다.문학이 상업주의 자들의 손에서 난도질을 당한다. 몇년 전, 한국에 IMF로 수많은 기업이 도산할 때에도 재정이 가난하다고 늘 울상을 짓던 문학잡지사는 단 한 곳도 문을 닫은 곳이 없었다. 문학인을 향한 문학잡지사의 교묘한 횡포로 거두어들인 돈 덕이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
은 참으로 아름답다 하겠으나 잘못하면 한국 문학인으로서의 비극의 처절함을 감당해야 한다.

현대의 자본주의 시대에서는 작품이 돈이 되어 생활을 꾸려가야 하는데 작품을 써도 돈 나올 구멍이 없으니 한국 문인은 잡지사 발행인을 빼놓고는 모두 항상 가난하다. 음악가나 화가는 무대나 사석에 초대라도 받지만 글 쓰는 사람들이란 초대조차 받기가 쉽지가 않다. 초대를 해 보았자 잔치집에 보탤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어 재미가 없다. 그러나 문공부에서 조차 문인들과 대화하기를 꺼리니 제대로 된 예산으로서의 돈이 나올 리가 없다.

순수문학의 발전과 전진을 더이상 기대할 수 있을까? 문학인에게 투자하는 사람이나 문학에 투자하는 기관은 거의 없다. 문학 속에서 보여주는 인생 철학과 문학 속에서 보여주는 인생에 대한 사색, 그리고 문학 속에서 나타나는 온갖 인생의 풍경이 사라진다. 인생이 문학이고 문학이
문화가 아닌가!문학이 없는 나라나 문학의 세계가 뒤쳐진 나라는 살벌하고 부끄럽다. 그리고 내일이 보이지 않는다.
문학은 짧은 시간에 세우려해도 세워지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열악한 문학 활동지가 한국이라고 어느 외국 작가가 말을 했던가? 올해에도 어머니 뵙기가 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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