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국익 지키는 외교력을 지켜야

2007-04-1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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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술이다. 크게는 회사의 합병인수에서부터 작게는 작은 물건 하나를 파는 것까지 모두 상술에 달려 있으므로 상술은 비즈니스의 흥망성쇠를 좌우한다. 거래와 흥정을 다루는 상술은 업계와 상품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 뿐 아니라 국가와 국제정세, 경제추세 등 모든 지식정보와 상대방이 처한 사정과 심리상태까지 파악할 수 있어야 제대로 나올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뛰어난 상술을 발휘할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가 않다. 타고난 상재가 있어야 하고 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창의를 궁리해 내야 한다. 비 오는 날에 짚신을 팔고 개인 날에도 나막신을 팔 수 있는 것이 상술이라니 상술은 괴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술의 거래와 흥정은 비즈니스나 그밖의 개인생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간의 관계에서도 흔히 있다. 외교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상술이 비즈니스의 사활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듯이 외교 또한 국가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친다. 삼국지를 보면 중원을 평정한 조조가 유표가 차지하고 있던 남쪽의 형주를 공략하여 마침내 수중에 넣자 유표의 식객이었던 유비는 남쪽으로 도주하였는데 목숨을 부지할 길이 없었다. 이 때 유비의 모사인 제갈량이 강남의 손권을 찾아가 설득하여 동맹을 맺어 조조를 격파했다. 이것이 유명한 적벽대전인데 이를 계기로 유비가 기사회생, 위·오·촉의 3국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외교력이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지은 좋은 예이다.


한미 FTA가 합의된 후 이 합의를 이끌어낸 한국협상팀에 대한 찬사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각 분야마다 미국과의 힘겨운 줄다리기 협상에서 대체로 한국의 국익을 지켜냈다는 평이다. 협상 결과는 김현종 통상본부장이 중간정도의 점수라고 말했듯이 꼭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겠지만 전문지식과 배짱으로 표정관리까지 해 가면서 이만한 결과를 이루어낸 협상술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할만 하다.

특히 김현종 통상본부장의 경우 FTA 협상을 주도하는 그의 정치감각이 매우 믿음직스러웠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잠시 한국에서 공부를 했을 뿐 대부분의 교육을 미국에서 받았다. 뉴욕의 컬럼비아대학에서 학사, 석사, 박사를 한 뉴욕주 변호사 출신이다. 한국에 귀국하여 변호사와 교수생활을 거쳐 외교부에 들어간 그가 이번 한미 FTA 협상의 사령탑으로서 국익을 지켜내는데 앞장섰던 모습은 참으로 보기에도 좋았다.

그는 한미 FTA 타결 직후 다음 대상 지역은 EU라고 했다. 왜 미국과 먼저 FTA를 했느냐는 질문에는 ‘원교근공’, 즉 먼 나라와는 교류하고 가까운 나라는 공략한다는 손자병법을 인용했다. 미국, 러시아, 동남아 등은 이 지역의 패권에 관심이 없으므로 편하게 FTA를 할 수 있다고 했다. FTA는 단순히 주판알만 튕기기 보다는 우리의 역사적 관계 등 전략적인 면을 모두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한미 FTA로 인한 농업의 피해가 가슴아픈 일이므로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한 그는 중국과의 FTA에서 한국의 농업이 완전히 죽게 될 수도 있으므로 농업을 보호할 수 없다면 중국과는 FTA를 할 수 없다고 했다.

FTA는 자유경제시대의 새로운 세계 질서이다. 100년 전 개항기의 수교조약이 쇄국에서 개국의 시대를 열었듯이 FTA는 새로운 시대를 개막하는 제 2의 수교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이 100년 전 구미의 힘이 미치기 전에 일본에 문을 열어 그 세력이 들어온 결과 일제의 지배를 받게 되었던 역사적 전철로 볼 때 FTA시대를 원교근공으로 접근하고 있는 그의 협상원칙은
FTA가 주판알을 튕기는 것 이상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한 국가의 외교는 최고통치권자의 결정으로 단안이 내려진다. 이번 한미 FTA에서 노대통령의 공로를 인정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외교에서는 실무협상을 맡은 외교관의 역할이 매우 크다. 외교관이 협상을 진행하고 그 결과에 따른 조언을 함으로써 통치권자의 결단이 이루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능한 외교관은 천군만마에 비유된다. 옛부터 천하를 도모하는 영웅들이 책사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애를 썼고 이런 책사들은 외교관으로써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고려가 거란군의 침공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고려를 구한 것은 고려군이 아니라 서희의 외교담판이었다. 실로 천군만마보다 위력이 큰 것이 외교력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전개되는 세계화 시대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외교가 중요시 된다. 정치와 군사 뿐만 아니라 경제문제까지 외교에 의존하게 되었다. 한국 외무부의 이름이 외교통상부로 바뀐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외교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중요하지만 주변 강대국에 끼어 있고 세계시장에서 경제적 활로를 찾아야 하는 한국에서는 더욱 중요하다. 그러므로 한국의 국익 신장과 국가 발전이 외교력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유능한 외교관을 양성하고 국제무대에 진출시키는 일이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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