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마추어 정치인들의 무대

2007-04-1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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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자(의사)

한인회장 투표일을 앞두고 막판 대결(showdown)의 시간이 임박하였다.
디지털 혁명으로 멀티미디어에서 쏟아내는 뉴스에서 유익한 보도만을 걸러내기란 정말 피곤하다. 그러나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인간은 미디어와 떨어져 살 수 없게 되었다.선거일을 코앞에 두고 2주간에 걸쳐 토요일 아침마다 모 뉴욕 한국어 방송사에서 ‘신문사와 원로 포럼이 선거에 끼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로, 지난 주는 ‘유권자들이 여권을 지참해야 되는지’란 주제로 청취자들과의 토론 프로그램이 각각 2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사회자는 원로포럼이라는 단체의 정체가 알 수 없고 모 신문사에 올려진 기사의 제목을 비방하는 청취자들의 전화가 쇄도하여 이런 토론 주제를 선택했다고 설명하였다.선거 막바지에 이른 토요일 아침 시청률이 높은 시간에 모 언론사와 원로단체의 이미지를 훼손시키고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듯한 이중 메시지를 방송매체의 특수성의 효과를 최대로 활용한 셈이다.
모 신문사와 원로단체에 비방하는 강력한 메시지가 한인사회에 전파를 타고 산울림의 메아리처럼 널리 퍼졌다. 방송을 듣는 청취자의 입장에서 보면 특정 후보와 방송사는 어떤 유기적인 결합이나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쟁 언론매체와 판촉 경쟁으로 인해 독자들의 방송매체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게 된다. 함께 살아 남으려면 경쟁 언론매체와의 공동 수익 증대와 공동의 발전 전략의 방향으로 나가야 옳지 않을까? 저널리즘의 윤리와 건전한 경쟁관계 정립을 세우기 바란다. 4월 10일, TV로 비쳐지는 한인회장 후보들의 합동 토론회에서 모 후보는 “나를 지지하는 운동원 몇 명이 선거운동을 펼치면서 1번과 3번 후보가 빨갱이라는 말로 선전하는 제보가 있는데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도발적인 말로 경쟁 후보를 자극한다.

빨갱이라는 원색적인 표현으로 서로 공방전의 불꽃을 튀기는 후보들을 보면서 시계바늘을 냉전시대로 돌려놓은 누렇게 빛바랜 흑백사진을 보는 듯 하다.정말 이들이 탈냉전시대에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는, 세계 시민의식을 갖고 있는 것일까? 한인들은 고국땅을 등지고 떠나야 하는 이민이라는 선택의 도전장을 낸 개척자들이다. 이렇게 낡은 시대감각과 의식수준을 지닌 후보들은 이민 한인들의 적극적인 삶의 페이스(pace)에 훨씬 뒤떨어져 있다.

또한 선거를 모니터하는 선거위원이라는 사람이 모 후보자의 냉정을 잃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말다툼을 하는 모습도 보았다. 또한 모 후보는 코리안 퍼레이드 행사의 허가 신청에 대한 건을 선거 이슈의 쟁점으로 부각시키고 있다.토론에서 벌이는 후보들 논쟁은 소모적인 말싸움으로 핵심에서 벗어나 설득력이 없다. 또한 투표일이 다가오면서 분열과 대립의 각축장이 되어버린 한인회장 선거전을 바라보면서 떠올리게 되는 사람이 있다.

80년대 중반, 어느 송년파티에서 40대의 사업가와 테이블에 자리를 같이 한 적이 있었다. 그는 미주지역 한인회 총연합회 회장 박지원씨였다. 그가 역이민으로 한국 정치판의 늪 속으로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면 이민사에 신화적인 업적을 남긴 개척자로 남았을 것이다. 유능한 사업가의 정치 야망이 악몽으로 바뀐 예로 뼈아픈 교훈으로 남아있다.

특히 앞으로 재외동포 참정권이 실현되면 해외 한인들이 풍차를 향해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동키호테처럼 한국 정치판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한국 정치 입문의 망상을 꿈꾸는 한인회장들이 탄생하지 않을까? 비영리단체의 봉사적인 한인회가 아마추어 정치인들의 무대인 굿판이 되어가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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