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2007-04-0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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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휘(예비역 준장)

사람은 누구나 잘 먹고 잘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어느 시대, 어느사회에서나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지구상 많은 나라 가운데도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가 있다. G-7이라고 불리는 선진국 일곱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부자 나라로 선망의 대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30개국은 몇 나라를 제외하고선 비교적 잘 나가는 나라들이다. 그 나라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난방이 잘 된 아파트에서 기름진 음식과 양주를 즐기며, 수세식 화장실에서 느긋한 배설의 여유를 갖는다.한편 방글라데시와 소말리아, 그리고 우리의 북녘땅 북한에서는 궁핍의 극한상황을 살아간다. 가을에 잎을 떨군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뼈만 남은 사지를 늘어뜨리고 눈꺼풀을 깜빡일 힘조차 없어 초점을 맞추지 못하는 굶주린 어린아이의 가련한 시선은 우리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메말라 비틀어진 젖꼭지를 빨다 지쳐 쓰러진 아기를 옆구리에 두고 시신이 된 젊은 아낙은 전생에 무슨 업보를 달고 이 세상에 왔을까?


빈부의 격차를 없애고 인류사회에서 가난의 괴로움을 몰아내어 능력 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질 수 있는 지상 낙원을 만들겠다던 공산주의는 잔혹한 인권유린과 빈곤으로 많은 생명을 앗아갔을 뿐, 해법을 주지 못한채 망하고 말았다. 정녕 대안은 없는 것일까.21세기에 들어선 지구촌은 만원이다. 지구라는 행성에는 65억의 사람들이 230개의 나라에 족보
를 두고 살아간다. 그 중 20억의 인구가 빈곤국에 몸을 담고 있다. 풍요로운 산업사회를 자랑하는 오늘, 10억의 사람들이 하루 1달러도 못되는 소득으로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쯤되면 ‘만물의 영장’도 ‘생각하는 갈대’도 별 의미가 없어진다. 사전적 의미로만 보자면 국민과 영토와 주권이 있으면 국가가 성립되는데 하자가 없다. 그러나 구성원인 국민의 의,식,주를 해결해 주지 못하는 나라는 나라의 구실을 다했다고 볼 수 없다.국가는 어찌해야 필요한 기능을 발휘하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가? 국가로 하여금 제 구실을 다할 수 있게 만드는 주체는 사람이다. 구성원인 사람들의 하기 나름에 따라 잘 사는 나라가 되기도 하고 굶어 죽는 백성을 방치하는 무책임한 나라가 되기도 한다. 그 구성원이란 사람들은 누구인가?

우선 대통령·정치인·각료·공무원과 같은 국가의 경영주체들이다. 그리고 재벌·경제인·기술자와 같은 생산주체가 있고, 학자·언론인·교육자·예술인 등 문화주체가 있다. 모두 국력을 좌우하는 멤버들이다. 그러나 넥타이 매고 회전의자를 돌리거나 고도의 기술과 문화감각이 뛰어난 사람만이 나라를 짊어지고 가는 것은 아니다.

아파트 경비원과 택시 기사와 요구르트 아줌마와 신문배달원과 미화원 아저씨가 있어 사회는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주변은 정갈함을 유지한다. 농촌과 어촌에서 많은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농어민이 있고 입을 것과 잠잘 곳을 마련하는 현장에서 비지땀을 흘리는 일꾼들이 있어 우리의
삶은 편안함을 지탱할 수 있는 것이다. 각기 제자리에서 본분을 지키며 제대로 해내는 하루의 일이 모이고 쌓여 가계(家計)를 이루고, 직장을 일구며,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것은 케인스나 새뮤얼슨의 경제이론을 들먹이지 않아도 자명한 이치이다.

후손들에게 물려줄 조국이 배불리 먹을 수 있고 살맛나는 부자나라가 되느냐, 아니면 하루 세끼의 허기를 채우지 못하는 빈국으로 전락하느냐 하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피할 수 없는 책임이요, 지고한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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