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내가 나를사랑하지 못한다면

2007-04-0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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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목회학박사)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자는 남도 사랑하지 못한다.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남’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불교의 불이(不二)사상을 말하지 아니 하더라도 ‘나’와 ‘남’, 즉 자신과 타자는 둘이 아니라 하나다. 성경이 이야기 해주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도 ‘네 이웃’과 ‘너’가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직시해 준다.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말을 바꾸면 “네 몸을 먼저 사랑하듯 네 이웃도 사랑하라”란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고로 네 이웃을 사랑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나의 몸과 마음, 즉 자신을 먼저 사랑하여야 한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여 늘 싫어하여 비관하고 좌절에만 빠져 있으면 언제 남을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오겠는가.

유교의 ‘수신제가(修身齊家)후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도 먼저 자신을 닦고 가정을 제대로 안정시킨 다음, 나라와 세상을 바로 세우려 해야 한다는 말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여 ‘나’에 대한 신뢰도 용기도 없어 수신이 안 되는 사람은 가정도 잘 꾸려나갈 수 없게 된다. 가정도 잘 꾸려 나가지 못하는 주제에 나라와 세상을 다스리겠다고 나서면 웃음거리 밖에는 안 된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에 대한 모종의 콤플렉스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다. 왜, 콤플렉스에 빠지는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가. 자신에 대한 가치(Value)를 아직도 모르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가치란 무엇인가. 자신, 즉 ‘나’의 가치는 “전무후무한 유일(唯一)의 존재가치”이다.


‘나’란 존재는 우주보다도 더 귀한 가치를 자신 속에 품고 있다. 다이아몬드의 희귀성보다도 더 희귀한 존재가 바로 ‘나’다. 그리고 ‘너’다. 곧 인간이란 탈을 쓰고 사는 모든 사람들이다. 이 세상에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고 현재 살아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태어난다. 그 중에 태어난 쌍둥이라도 똑 같은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뭐가 틀려도 틀리다. (유니버스·우주), 우주(宇宙)는 수많은 별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별들, 즉 항성(恒星·Star)은 또 지구와 같은 많은 행성(Planet)들을 갖고 있고 행성은 달(moon)들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수많은 은하(별들의 집합체)에 수백, 수천 억 개의 별들이 우주에는 존재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주, 유니버스다.
그런데 그 우주보다도 더 귀한 존재가 바로 ‘나’와 ‘너’다. 그런 지상 최고의 존재가치를 갖고 있는 ‘나’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누구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어떤 환경, 어떤 경우,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나’는 ‘나’를 사랑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너’도 사랑할 수
있다. ‘너’를 사랑하면 그 사랑은 반드시 ‘나’에게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게 된다. 우주의 법칙이다.

자살이 세계적으로 증가추세에 있는데, 이유가 있다. 그들이 죽음을 택하는 이유는 바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십대(十代·teenager)그룹과 20대 같은 젊은 사람들의 자살은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의 맹점에 달려 있다. 인간생명 가치에 대한 교육부재로 인한 자신을 사랑
하여야 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기에 ‘나’를 가치 없게 여기고 자살은 계속 증가되는 것이다.자신에 대한 가치의 중요성에 대하여 큰 몫을 하고 있는 곳은 바로 철학과 종교 분야다. 종교와 철학은 사촌간이라 할 수 있는데 철학을 떠난 종교와 종교를 떠난 철학은 생각할 수 없기에 그렇다. 그런데 얼마 전 한국 대학들의 실정을 보니 철학과와 종교학과는 학생들이 지원을 하지 않아 문을 닫는 곳이 많다고 한다. 그래도 신학은 좀 낳은 실정이라 한다.

이유는 단 하나다. 철학을 해 봤자, 종교학을 해 봤자 취직 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취직은 곧 돈과 연결되는데 돈을 벌 자리가 없으니 지망생들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가장 인기 있는 과목들은 졸업하고 나서 돈을 많이 받고 팔려갈 수 있는 과목이나 과라 한다. 이처럼 생명과 삶의 가치의 중요성보다 돈의 가치가 더 앞서 있는 세상이 현실임은 분명하다.

‘나’는 유일무이한 ‘나’다. 나를 사랑한다 함이,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에고이스트(egoist)는 아니다. 나의 소중함을 먼저 깨닫고 나를 먼저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가진 나의 소중함을 먼저 인식하고 사랑하지 못하는데 어찌 남을 사랑할 수 있나. 불이(不二)의 사상은 불성(佛性)이 모두에게 있음을 나타낸다. ‘나’도 부처고 ‘너’도 부처다. 서로 부처 모시듯 해야 한다. 그러면 세상은 저절로 평화로워 질 것이다. 하늘의 심성도 ‘나’와 ‘너’에 함께 들어 있다. ‘나’를 버리면 ‘너’도 버려지게 된다. 싫어하지 말고, 나를 사랑해야 한다. 끝까지 사랑하여 살아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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