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부활

2007-04-0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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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죽은 듯이 서 있던 나무 가지에 새 잎이 돋아나고 있다. 겨울이 지나 다시금 생기를 되찾는 봄도 이제는 익숙하다. 그리고 차례대로 피는 꽃들의 순서도 이제는 웬만큼 알만하다. 그러고 보니 내 나이 얼마던가? 갑자기 많이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문득 젊은 시절이 필름처
럼 떠오른다. 시간의 흐름은 인간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만물의 섭리인가. 사람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쇠하여 가는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말하기를 살아있는 것뿐 아니라 천하의 만물이 쇠하여 간다고 한다. 물리학의 원칙도 만물은 찌꺼기 혹은 재를 남기고 열량을 소모하며 늙어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백년도 못사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억 겁 년의 처음과 끝을 만든 신의 눈에는 아마도 만물
의 피곤함이 보일 것이다. 구약성경 전도서 1장에 보면 만물의 피곤함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8절). 전에 있었던 것도 다시 있을 것이며, 이미 한 일도 다시 하게 될 것이니 세상에 아무 것도 새로운 것이 없다(9절)고
한다. 순환의 수레바퀴는 자전과 동시에 공전을 하면서 굴러가고 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애독한 독일 문학 헤르만 헷세의 소설 ‘데미안’ 중에 “아프락사스, 알은 하나의 세계이다. 새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하나의 세계를 깨고 나온다” 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봄의 꽃밭을 보면 마른 풀더미를 뚫고 구군류의 꽃들이 먼저 싹을 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양파처럼 생긴 이 구군에서 조만간 온갖 아름다운 꽃들이 갖가지 빛깔과 향기를 내뿜으며 피어날 것이다. 이번 주는 각 교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리는 고난주간을 보내고 있다. 이 기간이 지
나면 부활절이 오게 된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도 춥고 눈도 많고 길었기에 새 봄과 함께 맞는 부활절이 우리에게 깊은 의미와 감동으로 다가오고 있다.고난과 죽음을 상징하는 고난주간에 이어서 생명과 기쁨을 상징하는 부활절을 의미하는 이스터(Easter)는 고대 앵글로 색슨어인 Eastre와 Ostara가 합성된 말로, 새벽과 봄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된 것이다. 즉 새벽은 어둠을 물리친다는 의미에서, 봄은 새 생명이 겨울을 이기고 나온다
는 의미에서 각각 부활절의 의미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두 단어를 합성하여 부활절을 일컫는 명칭이 되었다.

부활절에는 달걀을 나누어주는 풍습이 있다. 달걀은 봄의 상징이며 풍요의 상징이다. 그 ‘껍질은 예수가 사흘 동안 머무른 바위 무덤을, 달걀껍질에 칠하는 붉은 색은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예수가 흘린 피를 상징하는 것으로 교회에서 달걀을 나누어 준다는 것은 곧 부활의 소
망을 지니고 살라는 의미인 것이다.그러므로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궁극적 의미는 소망이다. 죽음의 절망에서 헤매는 인간에게 예수의 부활 소식은 소망의 소식이다. 이런 면에서 부활절은 비단 그리스도인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소망의 의미를 주고 있다.우리는 비록 오늘이 힘들고 고난이 있어도 내일의 소망을 바라보는 삶이 되어야 한다. 내일이 있다고 믿는 사람과 없다고 믿는 사람의 삶에는 큰 차이가 있다. 즉 소망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삶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이론이나 철학의 이야기가 아닌 오늘 이 한 순간의 우리의 삶에도 바로 여기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안하고 어두운 소식이 많은 요즈음 예수 부활의 의미가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의 가정도 사업도 우리 자신의 삶에도 새로운 희망의 싹이 다시 또 움트기를 기대한다. 동포사회 단체나 회장들도 이제는 더 이상 식상한 모습이 아니라 ‘화합과 봉사’를 목
표로 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으면 한다. 리차드 버크의 저서 ‘갈매기의 꿈’에서 나오는 갈매기처럼 단지 먹기 위해 존재하는 운명을
뛰어넘어 더 멀리 날겠다는 꿈과 소망을 갖고 자신을 던진 것과 같이 우리도 더 나아지고 새로워지는 우리의 삶을 위해 더 노력하고 그래서 꿈을 이루는 그런 삶을 살았으면 한다. 새 봄과 함께 찾아온 부활절, 또 다른 부활을 기대하며 알에서 깨어나 새롭게 태어나는 마음으로 자세를 바르고 단단하게 가다듬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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