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낮은 데로 가더니 바다가 되더라

2007-04-0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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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급한 마음에 벼랑을 타고 내려오던 산골 물도 강을 만나면 그 행동이 느긋해지고, 저문 강에
등을 누이고 낮은 데를 찾아서 둥둥 떠가며 피부에 스치는 노을도 그 마음이 붉으스레 따스하고 보기에도 차분하다. 큰 강에 몸을 섞고 말없이 유유히 흐르는 것은 낮은 데로 가기 때문일까?

낮은 데로 가는 얼굴들은 모두 만족한 얼굴이고, 낮은 데로 가는 발걸음들은 모두 서두르지 않고 편안한데 위로 가는 사람들은 행보가 시끄럽고 겉과 속이 거의 다르다. 바람이었다. 특히 한인회장들은 바람이었다. 어떤 회장은 따스한 바람이었고, 어떤 회장은 칼바람이나 회오리바람이 되어 위력을 내보이고 싶었고, 어떤 회장은 차디찬 이국의 온도를 견디고 드디어 내민 녹색의 보리 싹을 뭉개보려는 거친 바람이었다.


앞으로 가다가도 뒤로 부는 것이 바람인데 한인회장들은 앞으로 가는 데에만 연습이 잘 되고 위를 보고 올라가는 데에만 익숙한 바람이었다. 뒤를 보는 데에는 인색하고, 더욱이 낮은 데로 가는 데에는 손사래를 치며 거절하는 바람이었다.옛 말에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치의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신용이나 믿음이 없거나 뒤집기를 아무 부끄러움 없이 일삼는 사람을 경계해서 하는 말이다. 사람들이 싫다는데 왜 스스로 포기한 사실을 뒤집고 한인사회를 더욱더 갈가리 찢어놓으려 하는가? 잘못하면 존경은 커녕 웃음거리가 되거나, 공권력도 없는 한인회장이 그리 좋은가? 대체로 고기 맛을 본 중들은 염불에 뜻이 없고, 돈맛을 알게 된 목회자는 진정한 기도에 힘쓰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별 볼일 없던 사람이 감투 맛을 알게 되면 그 감투가 자기를 별개의 사람으로 만들어 놓은 줄 착각한다.

그만두어야 할 때인데도 죽기 아니면 살기로 위로 올라가 보려고 발버둥을 친다. 바람들이 떠도는 허공, 빈 공간도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차갑고 밑으로 내려가면 갈수록 뜨겁다. 왜 위를 그토록 좋아하고 위를 향하여 발버둥을 칠까?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열쇠가 감추어져 있다. 영혼의 존재가치를 터득해 보려는 마음의 열쇠도 있고, 마음의 존재가치를 터득해 보려는 정신의 열쇠도 있고, 행동가치의 존재를 파악해 보려는 양심의 열쇠도 있다. 또한 양심의 운영을 지켜보려는 사회윤리와 인간도덕과 종교의 지침서가 열쇠로 있다. 이 열쇠는 자기 반성의 가능성을 가진 자에게만 있다. 정치가 무엇인가? 권력을 쥐고 권력의 맛을 알기 이전에 우선은 희생이고 노고가 아닌가?

원래 집을 가리키는 말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큰집이요 하나는 작은 집이다. 큰집을 옥(屋)이라 하고 작은 집을 사(舍)라고 하는데, 큰집을 가리키는 옥(屋)이라는 한자를 나누어보면 시(尸)와 지(至)로 나뉘어 있다. 즉 시지란 ‘죽음에 이른다’라는 뜻이다. 과연 무슨 깊은 뜻을
품고 있을까? 또한 작은 집을 가리키는 사(舍)의 한자를 나누어보면 인(人)자와 길(吉)자이니 작은 집에 사는 사람은 편안하고 일상생활이 부담 없어 길하다는 뜻이다.

권력을 쥔 사람이 백성이 무엇인지 모르고 백성들을 향하여 그 권력을 치사하게 함부로 흔들다가 망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한인회장이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존경은 생각하지 않고 남 앞에서 위세를 떨어보려고 그렇게 발버둥을 칠까? 한국의 대선 전쟁에서 배워왔는지 뉴욕의 한인회장 선거도 삼파전으로 확정이 되었다고 한다. 몇 사람이 경선에 나와도 상관은 없지만 한인들로부터 박수를 받을만한 청사진은 준비가 되어있는지도 궁금하고, 누가 한인회장이 되든지 임기가 끝나갈 무렵 모든 한인으로부터 존경을 받아야겠다는 깨끗한 노고의 결심을 들고 나왔는지, 나, 하생(下生)으로서는 그것이 궁금할 뿐이다.

투표란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행위이다. 속이 텅텅 빈 강정같이 겉만 달콤하게 치장하는 입후보, 그간의 치적을 보아 한인사회를 산산조각 깨뜨렸거나 그럴 위험성이 있는 인물, 감투 맛을 본 사람의 인간임은 철저하게 경계해야 할 일이다. 보면 아는 것이고, 지나면 깨닫는 것이 전진하는 사람들의 채찍이 아니겠는가?

어려운 여건 가운데에서도 그간의 여러 한인회장들의 노고로 잘 운영되어 오던 뉴욕의 한인회가 만신창이가 된 지금, 교포들은 무엇이 한인회장이 할 일인가를 잘 알고, 한인사회의 발전과 하나로의 한인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새 한인회장에게 존경심을 키우며 이번 선거에 임해야 할 일이다.
한인회장은 축사 회장도 아니오, 접대 회장도 아니다. 교포를 대표할 수 있는 한인회장, 교포들과의 선거 계약이 유효한 한인회장, 동포들을 우롱하면서 위로 가려는 한인회장이 아니라 교포들의 발 아래 낮은 데로 가려는 한인회장이 우리에게는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한인회장은 낮은 곳을 향하여 내려가 보라. 그곳이 얼마나 당신을 편하게 하며 존경받게 하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산골 물은 깔깔깔 웃으면서 아래로 가고, 하루를 다 지내본 노을도 강물에 등을 누이고 두 손을 흔들면서 아래로 가지 않느냐! 낮은 데로 가더니 산골 물도 바다가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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