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애교의 거짓말

2007-03-3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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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목회학박사)

3월도 마지막 날이다. 하루 저녁만 자고 나면 4월이다. 4월1일은 만우절(萬愚節·April Fool’s Day)이다. 영어를 그대로 풀어보면 ‘4월 바보들의 날‘이다. 1년에 단 하루밖에 없는, 거짓말을 해도 되는 날이 바로 만우절이다. 이번 만우절은 일요일이라 교회에서 설교하는 목사들의
말들이 전부 거짓말로 들릴까 난감해진다.

만우절의 유래는 프랑스에서 시작됐다. 오래 전 프랑스에서는 따뜻한 봄이 시작되어 꽃이 피는 계절의 4월1일을 새해로 지냈다 한다. 그러다 1594년 샤를르 9세는 새해를 1월1일로 바꾸었다. 그런대도 사람들은 구습을 버리지 못했다. 4월1일이 되면 새해 나들이도 하고 선물교환을 하며
새해처럼 지냈다. 그러자 1월1일을 새해로 지내게 된 사람들이 그들을 놀리기 시작했다. 4월1일이 되면 가짜로 된 선물을 그들에게 보내거나 가짜로 초대를 해서 헛걸음을 하게 하는 등 거짓으로 상대를 놀
리는 풍습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것이 발전돼 4월1일을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골탕 먹이는 날로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날을 ‘4월 바보들의 날’이라 칭하게 되었다 한다.


프랑스에서 유래된 만우절은 전 세계에 퍼져 이 날만은 거짓말을 하여 상대방을 당황하게 해도 용서받는 날로 공인되어 있음이 더 바보처럼 우습게 여겨진다. 그러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전쟁 같은 세상살이를 살면서 이날 하루만은 서로 거짓말을 하며 바보처럼 웃고 지낼
수 있다는 것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그런데 문제는 거짓말의 도수다. 갑자기 상대방에게 “남대문 열렸어요!”와 같은 애교적인 거
짓말을 해서 당황하게 하는 것은 그런대로 괜찮다. 또 “누가 찾아 왔어요!”해서 헛발걸음을 하게 하는 것도 애교로 봐 줄 수 있다. 직장에서는 “사장님이 부르셔요!” 정도도 그런대로 넘어갈 수 있다. 정말로 웃고 넘어갈 수 있기에 그렇다.

그러나 거짓 전화와 제보는 웃고 넘길 일이 아니다. 거짓제보와 전화로 가장 골머리를 썩이는 곳은 경찰서와 소방서 혹은 언론사와 방송 계통 등의 단체들이다. 특히 이번 만우절은 일요일이다. 일요일에도 일하는 경찰서와 소방서 및 언론계통의 직원들은 걸려오는 전화가 거짓제보인지 아닌지를 잘 구분하여 쓸데없는 인력 낭비를 막아야 할 것 같다.
윤리와 도덕적으로 거짓말을 하며 살아서는 안 된다. 진실만을 말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거짓말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거짓말을 해야 할 때는 ‘하얀 거짓말(White Lie)’이라 한다. 주로 ‘빨간 거짓말(Red Lie)’은 사기성이 들어있는 악의의 거짓말로 나쁜 용어로 사용되나 하얀 거짓말은 선의의 용어로 사용된다.

가령 어떤 환자가 초기 암에 걸린 것이 의사의 진단으로 확인됐을 때 그 환자에게는 선의의 거짓말, 즉 하얀 거짓말로 “암이 아니다”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경과를 보아 가면서 언젠가는 암이라는 것을 밝혀야겠지만, 처음부터 암이라는 것을 밝혀 환자로 하여금 실망과 좌절에 빠지게 한다면 치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쓰이는 거짓말 중에는 다 알면서도 그냥 넘어가는 거짓말도 있다. 처녀들이 말하는 “나 시집 안가요”와 노인들이 말하는 “일찍 죽어야 한다” 그리고 장사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밑지고 판다” 등이다. 시집 안가는 처녀 없고, 오래 살려고 하지 않는 노인들 없고 밑지고 장사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뻔한데도 그렇게 말하는 것은 인생살이가 그렇다는 것일 게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나는 그 때 반장이었다. 반에서 한 친구가 돈을 잃어버린 사고가 발생했다. 담임선생이 “범인이 나타날 때까지 모두 하교를 중단 한다”며 모두 눈을 감으라 하더니 “범인은 손을 들라”했다. 나는 손을 들었다. 그리고 모두 하교 했다. 거짓말을 했다. 도둑은 따로 있었는데, “왜 그 때 내가 손을 들었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포커페이스(Poker Face)’란 말이 있다. 포커를 할 때, 상대방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잘 들어 왔어도 그만, 못 들어왔어도 얼굴에 전혀 나타나지 않게 표정관리를 잘 하는 것을 말한다. 거짓얼굴을 하고 있어야 돈을 잃지 않는다. 어찌 보면 인생자체가 거짓으로 시작해 거짓으로 끝나
는 것인지도 모른다. 태어나기 전과 태어난 후 그리고 살다가 죽어 가는 그 과정 자체가 한 편의 연극이나 드라마처럼 혹은 ‘꿈’같은 것이기에 그럴 수도 있다. 만우절, 한 번 속이고 속아보자. 그리고 바보처럼 한바탕 웃어보자. 애교의 거짓말로 쌓였던 스트레스를 맘껏 풀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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