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영어가 뭐길래?

2007-04-0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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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 권(뉴저지)

최근 한국의 대학들이 앞다투어 모든 강의를 영어로 하고자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게 무슨 망국의 소리인가?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고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했다 하여 우리나라가 아직 최고의 선진국이랄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만큼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여러가지 요인도 있겠지만 나는 단호히 ‘한글’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글이 아니고는 그 많은 선진 문명과 문화, 기술을 이 짧은 세월에 그렇게 빨리 받아들이고 발전시킬 수가 없다.

우리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적은 수의 문자, 즉 자음 14개와 모음 10개, 모두 24개만 익히면 이 세상 어느 나라의 글도 이해하고 표현 못할 것이 없는 가장 과학적인 글이다. 물론 약간의 발음들이 표현하거나 표기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으나 이는 우리가 그들에게 익숙치 않아서 그렇지 그에 맞게 훈련하고 개선한다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일들이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 이후 우리의 위정자들은 서열차대했듯이 우리의 한글을 언문이다 상놈 글이다 하며 천대하다가 일제시대에는 나라까지 들어먹고 사장되다시피 한 것을 해방 후 겨우 꺼내어 쓰기 시작한 것이 불과 반세기 전의 일이다.


이제 신문에서도 한자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우리 글이 자리가 잡혀가나 보다 했더니 얼토당토 않게 되지도 않는 말들을 영어랍시고 방송에서까지 마구 늘어놓는 것을 보면 가관이다.나는 미국에서 오랫동안 교수생활을 하던 한 동양계 이민자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그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저 사람이 저런 영어로 교수생활을 하다니’ 할 정도였다. 그가 전공 실력은 있을지 모르되 그의 강의를 듣고 영어는 커녕 전공과목이나 제대로 전수가 되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래도 그것이 가능한 것은 이곳이 온갖 인종들이 모여사는 미국이며, 영어가 공용어이고 표준어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국의 대학에서 석사, 박사학위 논문에 한자를 섞어 쓰고자 하는 학생들이 한자를 그림 그리듯이 베껴 쓴다는 말을 들었다. 영어라고 다를 게 무엇이 있겠는가?우리가 어려서 한자를 배우고, 영어를 배우고,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좋다. 커가면서 배우는 것도 좋다. 그러나 다 커서 혀가 굳고, 머리가 굳고, 몸이 굳은 뒤에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 영어가 콩글리쉬일 수 밖에.

고급 실업자와 기러기 아빠인지 따오기 엄마인지를 양산한 것이 대학들의 책임이라고 할 수만은 없지만 뻐꾸기 학생 하나를 양육할 돈이면 한국내 어린 학생 수 백 내지 수 천명에게 영어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다고 본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 이후 최근 미국에서는 대학 무용론까지 대두되고 있는데 한국의 대학들이 전과목을 영어로 강의한다고 더 많은 학생들이 모여들며 실력이 향상되고 수지가 맞으리라고 생각하는가?
아직도 눈앞의 이익만을 위하여 길거리의 포장마차 보다도 쉽게 바뀌고, 바꾸는 정당 및 정치인들과 사대주의 사상에 빠져있는 위정자들을 볼 때 그래도 이들은 국민들에 의해 매장되거나 심판을 받을 여지라도 있다. 하지만 교육기관, 그것도 최고학부에서 상도에도 없는 짓들을 하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영어, 외국어는 학자나 교육자가 되고자 하지 않는 한 수단이지 결코 목적이 될 수 없다. 한글과 한국어, 이는 그 큰 땅덩어리 중국과 미국을 몽땅 다 준다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한국인의 실력은 한글과 한국어에서 나오는 것이지 영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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