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한미 FTA의 정치 공방전

2007-03-2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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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최근들어 한국경제의 장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부쩍 늘었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샌드위치 경제론을 제기한 후 대기업 총수들이 잇달아 샌드위치 경제론에 동조하고 있다. 한국 경제가 일본을 쫓아가지는 못하고 중국의 추격을 받는 중간에 끼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어느 한 분야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산업분야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말이다. 정부는 그렇지 않다고 반론을 펴고 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대일무역의 적자가 늘고 대중무역의 흑자가 줄어드는 현상이 샌드위치론을 증명해 주고 있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는 사설에서 한국경제가 한때 고속성장의 모범으로 꼽혔으나 너무 빨리 늙어 중년의 위기 속에 침몰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 징후로 경제성장률이 둔화되었고 한국기업의 공장은 해외로 이주하지만 국내 투자유치의 여건이 나빠서 외국자본이 한국 투자를 기피하고 있는 점을 들었다. 얼마 전에 이 신문은 “서울은 몽유병에 걸렸다”는 특집기사에서 한국이 중국, 인도, 일본의 틈바구니에 끼어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지만 대책이 없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한국경제의 성장은 경제정책의 덕분이었다. 박대통령 시절 해외자본을 끌어들여 산업을 일으키고 수출을 장려하여 경제규모가 급성장했다. 그리하여 서울올림픽을 개최한 노태우대통령 시절에 경제가 절정을 누렸으나 그 때부터 민주화바람이 노사문제와 과소비 등 부작용을 일으켜 성장세를 가로막았다. 그 결과 김영삼 대통령 시절 외환 위기를 맞이했고 김대중대통령 시대에 이 사태가 진정되었으나 그 이상의 성장대책이 없었다.

김대중과 노무현 시대에 좌파정책이 실시되면서 그 효과보다도 오히려 부작용이 나타나 경제상태가 나빠졌다. 경제성장이 둔화되는 한편 부동산 폭등, 실업과 빈부 격차의 심화현상이 나타났다. 아직도 한국 경제는 표면상 번영을 구가하고 있지만 서민들의 생활은 외환위기 때보다도 더 힘들다고 한다. 정치가 경제를 키웠던 한국에서 어느덧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아 성장과 발전을 저해하는 일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한미 FTA, 즉 자유무역협정을 둘러싸고 정치공방전으로 시끄럽다.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 시장원리에 따른 자유무역은 세계경제의 기본구조로 등장했다. 이에따라 국가간 무역 개방을 위한 쌍무협상이 활발해지고 있다. 한국은 이미 칠레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었고 이제 미국과 협상을 마무리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 협상에 대해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맹렬한 반대운동을 하고 있다.

한국이 미국과 무역개방을 하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취약한 한국의 산업분야가 타격을 입게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이해당사자들이 반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긴 안목으로 볼 때 자유무역은 불가피한 추세이므로 FTA는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이 협정으로 시장을 개방함으로써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장기적 차원에서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이러한 국제경쟁시대에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유리한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여 부가가치를 높힘으로써 세계경제에서 위치를 확보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한미 FTA를 밀어부치고 있는 노무현대통령은 개방의 불가피성을 들면서 앞으로 중국과 일본을 상대로 FTA를 하기 이전에 미국부터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FTA에 관한 그의 방침은 매우 타당하지만 정치권, 특히 진보측을 자처하는 여당계는 반대투쟁에 앞장서고 있다. 이렇게 되자 야당도 적극찬성 방침에서 균열이 생기고 있다. FTA 반대운동에 편승하여 표를 얻
자는 속셈 때문이다.

그런데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른바 FTA 음모론이다. 한미 FTA는 3월 말 타결, 6월 말 체결, 금년 하반기 이후에 비준의 절차를 밟도록 일정이 짜여있다. 그런데 FTA가 체결되어 비준과정으로 들어가면 반대운동이 절정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는 대선운동의 막바지 기간으로 자연히 FTA가 대선 이슈의 중심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진보좌익세력은 이 문제를 반미 이슈로 전환시켜 전국에 반미 선풍을 일으키면서 대선 판세를 뒤집는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시나리오라면 지금 FTA를 강력히 밀고 있는 노대통령은 반미 이슈를 만들기 위한 불씨를 만들고 있는 것이며 여당쪽의 FTA 반대운동은 불을 지르기 위한 인화물질인 셈이니 무서운 음모가 아닐 수 없다. 지난 28일 시청 앞에서 벌어진 FTA 반대 집회에서는 지난 대선 때를 연상시키는 촛불시위가 이미 등장했다. 앞으로 예의 주시해야 할 일인 것 같다.
만약 한미 FTA에 대한 찬반 공방이 반미 선동으로 변질되어 금년의 대선에 이용된다면 이것은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죽여버리고 말게 될 것이다. 국민이 원하는 정치는 경제를 살리는 정치이다. 대선을 위해 국가 경제의 미래를 제물로 삼는다면 그런 정치
부터 국민의 손으로 제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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