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지성인들의 침묵

2007-03-2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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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언제인가 한 신문에서 미주지역 거주 한인들의 학력수준은 보통 고등학교 이상이라는 기사를 본 일이 있다. 그중에서도 뉴욕의 경우 대졸이상의 학력을 가진 동포들도 상당수에 달한다는 보도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뉴욕은 의식수준이 아주 높은 지성인의 집단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 사는 동포들은 나름대로 사회에서 돌아가는 이모저모를 보면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분별력을 통해 말하고 행동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면 동포들은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는 절대 동요하는 법이 없다. 하지만 이들의 힘은 가히 폭발적이어서 언제, 어느 때 무엇이 되어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마치 총탄이나 폭탄과 같은 군상이다.
단 한 번의 폭발이나 저격을 위하여 단지 불만을 감추고 침묵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이 발휘하는 인내심은 한인사회에서 폭죽놀이를 하며 들떠 있는 사람들보다도 더 무게가 있고 더 무서운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런 이들이 왜 침묵하고 있을까? 지성인들은 어려운 일을 참아내고 고통을 감수하며 인내할 줄 알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이민을 결심하고 낯선 땅을 찾아온 동포들 가운데는 한국의 지역사회를 위하여 심신의 노고를 아끼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며, 나아가서는 나라의 안정과 발전을 위하여 고군분투를 아끼지 않은 저명인사들도 있을 것이다. 또한 나이는 많이 들었지만 예기치 않은 어려움도 겪고 이겨내기 힘든 일을 해결하며 터득한 지혜와 경륜을 갖고 있는 어른들도 많을 것이다. 이 분들은 한인사회의 분열과 어지러진 관계와 상실되어 가고 있는 신뢰와 믿음을 보면서 다만 참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영향력이 막대한 이 뉴욕일원의 종교계의 지도자는 왜 침묵을 하고 있는 것일까? 상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일을 자제하고 오히려 아픈 마음이 치료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 것이다. 이런 것이 지성인과 비지성인의 차이이다.

만약 이번 뉴욕한인회장 선거에 출마한 세 후보 중 우리 커뮤니티를 혹 마음대로 주물러도 된다는 야심을 가지고 있는 후보가 있다면 이는 어불성설이다. 말없이 지켜보는 다수의 지성인들이 결코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뽑으려는 한인회장이 무엇인가? 이 직책은 공권력도 없는 상징적 위치에서 한인사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투철한 봉사심과 사명감을 기본으로 가지고 있어야 할 직책이다. 그러한 각오나 결심이 없는 후보라면 지금이라도 공탁금을 다시 반환받고 물러서야 한다.

제대로 된 청사진도 마련하지 못하고 무턱대고 동포사회를 좌지우지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회장이 되려고 하는 야심은 이제 버려야 할 때다. 지성을 갖춘 우리 동포들은 결코 녹록치 않다. 살기에도 버거운 이민생활에서 죽기 살기로 힘들게 일하는 동포들에게 청량제와 같은 신선한 청사진, 동포들이 진정 원하고 인정하는 한인회장, 이런 사람이 당선된다면 동포들은 한인회를 위하여 주고도 또 주고 싶고, 주면 줄수록 더 기분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허위사실이나 유포하고 밥상 위에 거짓을 차려놓고 사기성의 농간으로 한인회장이 된다면 모든 한인들은 한인회를 외면하고 한인회장에게 등을 돌릴 것이다. 출마한 후보들은 이 한인사회가 지성인들의 침묵을 담은 포탄이나 총탄이라고 생각을 해야 옳을 것이다.

“자유의 나라, 내 배짱대로 하는데 누가 뭐래!” 이것이 자유의 나라가 아닌 것이다. 정직과 성실과 공존이 자유를 만들어내는 것이고 그 것의 결정체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이다. 미국(美國)! 문자 그대로 아름다운 나라가 아닌가! 이 아름다운 나라에 와서 아름답지 않은 생각, 아름답지 못한 야심으로 한인사회를 흐트러 놓는다면 침묵하는 지성인들은 이제 더 이상 참지 않고 인내를 거둘 것이다. ‘까마귀 노는데 백로야 가지 마라’가 아니라 신선하고 바람직한 한인회를 만들기 위해 너도 나도 이번 선거에 나서 내 한 표를 행사할 것이다. 말없는 다수의 힘은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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