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잃어버린 믿음

2007-03-2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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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일(전 MBC 아나운서)

우리 민족에게는 내우외환(內憂外患)의 굴절된 역사로 인해 뿌리 깊은 불신(不信)이 드리워져 있다. 단일민족이라면 단합된 힘을 과시할 수 있으련만 응집력이 떨어지는 건 역사 속에 응고된 불신 탓이다.삼한이나 삼국시대까지 멀리 보지 않더라도 최초의 통일국가였던 고려 474년 세월은 권력을 둘러싼 엘리트 집단의 상호불신으로 얼룩진 왕조였다. 패권 다툼에서 불거진 불화와 반목이 불신을 지피는 불쏘시개 구실을 한 것이다.

당쟁, 당파싸움은 조선왕조 518년 동안에도 끊임없이 전개됨으로써 사대사화(四大士禍) 같은 모진 역사를 기록했다. 심지어 임진왜란 같은 국난을 당하면서도 조정에서는 단합된 목소리를 내지 못할 정도였다.
1910년 망국의 설움을 안고 살던 민주조선 사회 역시 알력과 견제 분위기로 서로를 믿지 못했다. 2개 조직으로 갈라선 한인사회가 또다시 우익과 좌익 등으로 세포분열을 일으켜 단합된 모습은 커녕 오히려 일본의 만주 점령으로 끝장을 보고 말았다.


나라가 해방되던 1940년대에는 우익과 좌익의 첨예한 대립 속에 정치권은 60여개 정당이 난립하는 난맥상을 보였다. 생뚱스럽게도 어두운 역사를 구차하게 끄집어 내는 것은 파란만장한 우리 역사 속에 상실된 믿음이 한(恨)으로 맺힌 까닭이다. 힘 가진 자들의 독선과 전횡에서 비롯된 불신풍조가 이끼처럼 우리 역사 속에 각인되었다는 뜻이다. 민족 비원인 통일만 해도 그렇다. 통일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요인은 무엇인가. 상호 불신이다. 남과 북이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지 예단하기 어렵다. 한때 “믿지 말자 미국X 속지 말자 소련X”이란 유행어가 나돈 적이 있다. 기댈만한 언덕이 없었던 시절, 외세에 대한 짜증이 분출될 만큼 우리에게 믿음이 없었다.

국론 분열이 심각한 건국 초기,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국민 단합을 소망한 나머지 대동단결(大同團結)을 외쳤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직설적인 표어(Slogan)가 50년대 국민들의 중심화두가 되기도 했다.그런가 하면 한국인들이 일본사람들의 단결심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우스개가 나돌았다. “한국사람 한 명이 일본사람 두 명 세명을 이길 수 있지만 일본사람 두 명은 한국사람 세 명, 네명을 이길 수 있다”가 그것이다.세계 여러 민족이 모인 미합중국에 한인이민 역사는 일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민족에 비해 성장 속도가 빠르다는 평을 듣는다. 그런 한인들이 동업에는 인색하다. 동업에 성공하는 예도 드물다. 왜 그럴까. 서로를 믿을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나라마다 신뢰지수를 가늠하려면 법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수준을 보면 감지할 수 있다는데 한국인이 갖고 있는 법에 대한 신뢰는 어느 정도일까. 법이 강자에게 약해선 안되고 약자에게 강해서도 안된다. 한국은 죄인에게 병 보석이나 특사가 유난히 많은 나라다. 신뢰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사례다.

인간은 믿음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인간관계의 생명력이 바로 신뢰다. 세상에서 믿음처럼 듬직한 것도 없다. 부담 없고 편해서 좋다. 믿음이 가면 무엇이든 마음놓고 맡긴다. 비록 손해볼 지언정 조건 없이 믿어주는 용기는 그 믿음직한 행위가 아름답다.공자는 말했다. <목숨을 건 전쟁터에서 무기 버리고 식량까지 버려도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은 믿음(信)>이라고...

사랑에 대한 의심을 품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남을 의심하면 남도 나를 의심한다. 믿음이 가면 인심이 떠난다. 믿음을 잃고나면 사람을 잃고 만다. 믿음은 참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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