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더 이상 主義는 없다

2007-03-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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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구 소련의 붕괴 이후 세계 사회주의의 지도국가였던 중국이 지난 주 폐막한 전국 인민대표회의에서 자유재산보호법인 물권법을 공식으로 채택하여 사회주의 경제체제에 종지부를 찍었다. 중국은 소련 붕괴 이후 이른바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채택하여 개인의 영리행위와 재산 보유를 인
정해 왔으나 개인 재산에 대한 완전한 보호장치가 없는 불완전한 사유제를 지속해 왔다. 그러나 이번 물권법의 확정으로 사유재산은 국공유 재산과 똑같이 완전한 법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여러가지 다른 점이 있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사유재산 여부에 있다. 사회주의는 기본적 경제부문의 사유화를 인정하지 않는다. 생산수단은 물론 주택도 국유, 시영, 또는 협동조합 소유이다. 국유기업은 독립된 경영을 하지만 정부 지도를 받으며 이윤은 국고로 환수된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자본가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이윤을 목적으로 기업활동을 한다. 자본가나 노동자나 이익 극대화를 목표로 일하고 축적된 재산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보호를 받는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중국의 물권법 채택은 사회주의 경제에서 자본주의 경제로 전환하는 일대 변혁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다른 점은 자본주의가 팽창을 위주로 하는 반면 사회주의는 분배를 위주로 하는 점이다. 산업혁명 이후 등장한 자본주의는 인류의 경제 규모를 급속히 팽창시켜 경제생활을 윤택하게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공황과 실업, 전쟁 등 모순이 나타났고 특히 부익부 빈익빈 현상에 따른 계층간 갈등이 심각하게 나타났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이 마르크스-엥겔스의 이론에 따른 사회주의 운동이었다.

사회주의 이론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그 자체에 내재하는 모순과 폐단 때문에 결국에는 몰락할 수 밖에 없고 다음 단계인 사회주의로 넘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촉진하기 위하여 대중운동, 특히 노동자 운동이 필요하고 일단 사회주의가 완성되면 국가라는 조직도 필요하지 않게 되므로 국가가 사멸한다는 것이다.그러나 이 이론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각각 불변하며 절대적인 대립관계라고 본 것이 잘못이었다. 실제로는 자본주의에서 지나친 자유경쟁에 따라 사회경제적으로 많은 모순이 나타나자 이를 개량 완화하기 위한 수정 자본주의가 나타났다. 그 내용을 보면 국가가 사기업을 규제하는 활동을 강화하고 노사간의 협력관계를 촉진하고 소득 불균형을 시정하는 조세정책을 채택하는 것 등이었다. 이리하여 오늘날 양적 팽창의 바탕 위에 공정한 분배 시스템을 추구하는 사회복지국가의 개념이 나오게 된 것이다.

한편 사유재산을 금지하고 부의 공정한 분배를 추구한 사회주의는 어떻게 변화했는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개인이 재산을 모을 수 없는 제도에서 열심히 일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연히 생산성이 떨어지고 경제의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경제의 성장이 없으면 분배할 것도 없을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사회주의는 성장을 위주로 하는 자본주의 요소를 채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먼저 소련이 그랬고 중국 등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이 그 뒤를 따랐는데 이제 사회주의 마지막 종주국인 중국이 사유재산을 완전 보장하게 되었으니 사회주의는 종말을 고한 셈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순수한 자본주의나 사회주의가 더이상 어디에서도 절대적인 진리로 행세할 수는 없게 되었다. 팽창을 위주로 하는 자본주의는 분배 시스템을 보완하는 복지정책을 도입했고 공평한 분배를 위주로 하는 사회주의는 팽창을 도모하기 위한 자유경쟁의 원리를 받아들였다. 이처럼 세계는 토니 블레어 영국 수상이 말한 것처럼 제 3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초월한 중도 실용주의가 바로 그 것이다.
그러나 중도주의, 실용주의라는 것을 하나의 주의로 볼 수 있을까. 그것이 하나의 주의라면 또 그에 따른 문제점이 수정될 것이고, 그 결과 또다른 주의가 생겨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라는 말은 편의상 또는 어떤 목적상 만들어진 용어일 뿐이다. 결국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주의
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다.

중국의 전국 인민대표회의의 폐막 후 원자바오 총리는 “정부의 모든 권력은 인민이 부여한 것, 인민에 속한 것, 인민을 위한 것이므로 모든 것을 인민에 의지하고 모든 공은 인민에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링컨 대통령이 말한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과 같은 말이다. 무슨 주의니 하는 따위가 아니라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복리만이 최상의 가치라는 말이다. 아직도 잠꼬대처럼 사회주의 타령만을 하고 있는 북한도 빨리 변화하여 살 길을 찾아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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