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법정에 서는 한인 장애인들

2007-03-1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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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돈(법정통역)

형사법정에 서게 된 피고인들을 대해 보면 전문가가 아닌 내 눈으로 보더라도 그들의 정신상태가 비정상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누가 보더라도 정신병적 증세가 확실한 사람들이야 구별이 간단하지만 그렇지 못한 어정쩡한 증세의 사람들을 놓고 그 사람의 정신 상태가 의학적으로 병적이냐 아니냐를 가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뿐 아니라 그 병적인 상태 여부에 따라 형사법적 책임 소재, 즉 유·무죄가 갈려지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 40대의 한 한국 부인이 가정폭행 혐의로 체포되어 입건되었는데 그의 많은 전과기록 때문에 상당한 액수의 보석금이 책정되었고 형무소에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된 경우가 있었다. 이 부인은 과거 수 년 동안 백화점에서 저지른 되풀이된 좀도둑 사건 때문에 이미 여러번 이 법원을 거쳐 갔고 또 신상조사를 위한 면담 때에는 번번이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되풀이하던 정신이 비뚤어진 여인이었다.


이 여인은 형무소에 갇혀있는 동안에 그의 불법체류 신분이 밝혀져서 재판이 끝난다 해도 이민국에 의해 추방조치를 당할 운명에 이르게 되었다.
또 최근에는 영어 연수차 유학와 있는 20대의 청년이 불과 3개월 사이에 백화점에서 좀도둑질로 세번째나 체포되어 들어온 경우가 있었다. 면담해 보면 전혀 정신적 이상 증세가 보이지 않는 준수하게 생긴 멀쩡한 젊은 청년인데 역시 도벽이라는 습성이 몸에 밴 정신병적 경계에 가까운 사람이다.

흔히 이 사람들과 같이 좀도둑질을 되풀이하는 사람을 보고 도벽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고, 그 도둑질하는 악습을 일종의 병적 증세라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까지가 의학적으로 정신병으로 취급할 수 있는 증세인가를 결정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뿐 아니고 설사 그것이 정신병적 증세라고 하더라도 과연 의학적인 치료가 가능한 증세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 증세가 병적인 이유 때문에 저지른 일이라면 법적으로 면죄받는 규정이 있어 법원에 정신 감정을 의뢰할 수 있는 절차가 있다. 그러나 일으킨 사건에 대한 형사법적 처벌은 면제받을 수는 있더라도 정신병적 이유가 있다고 판단되면 상당기간 병원에 유치되는 경우가 많다.

이 여인의 경우, 네 다섯번쯤 들어왔을 적에 담당 변호사가 이런 정신감정 신청을 고려했을 만큼 심각한 도벽이 있는 여인이었다.또 다른 한 여인은 여섯 가족이 베드룸이 하나인 아파트에 거주하는데 이 집을 방문한 친척이 발을 들여놓을 수 없을 만큼 쌓여있는 쓰레기를 발견하고 이를 치우다가 부인과 말다툼이 생겼고 경찰에 신고하러 간 이 부인은 질문하는 경찰에게 폭행을 저질러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이 부인은 자기의 변호사 뿐 아니라 누구와도 정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없을 만큼 심한 신경질 증
세를 보여 변호사가 사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이 사람의 경우도 병적인 증세가 완연한데 그의 가족이 아직 의학적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었고 결국에는 법정에 서게 되는 일이 벌어진 경우이다.

법정에 서게 되는 한인들 중에는 이런 정도의 정신 장애자들이 의외로 많다. 하지만 하나같이 모두 가족들이 그냥 묻어두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니 이들이 언제 어떤 일을 저지를지 예측할 수 없는 마치 폭약을 지니고 생활하고 있는 격이다. 이런 예에서 보듯이 틀림없이 정신병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인 것이 분명한데 우리 한인들은 이들을 전문의에게 상담하는 데에는 아주 태만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 정신병적 증세를 보이는 사람이라면 그 가족들이 당연히 전문가와 상담해야 마땅한 일일 것이고 그랬더라면 형사법정에 서게 되는 정도까지의 병의 발전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한인들은 정신병에 대한 인식이 많이 잘못되어 있다. 가족 중에 이런 증세를 보이는 사람이 있어도 쉬쉬하게 마련이고 이런 것을 아주 큰 수치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 증세가 완전히 빗나가서 그야말로 미쳐 날뛰기 전에는 의사의 치료를 받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습관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큰 비극에 이르도록 방치하고 있다. 병은 소문내어 고치라고 하는 옛말이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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