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북핵 해결은 민족웅비의 계기

2007-03-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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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영(전 언론인)

미국의 대 한반도 정책이 평화공존 쪽으로 발 빠르게 변하고 있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그동안 지루하게 밀고 당기던 6자 회담이 올들어 2월 13일 타결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기류가 바뀌고 있다.

한반도 운명의 열쇠를 쥐고 있는 유일 초강국 미국의 파워가 지금 중동의 수렁에 발목이 잡혀 힘이 빠지면서 북한의 비핵선언을 수용, 화해의 길로 방향을 틀고 있는 것이다.그런가 하면 2.13 이전까지 미국의 대북 강경책에 충실하게 협력해 오던 하위 동맹국 일본은 방향을 바꾼 부시 정책에 반대하면서 저항을 계속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이 변화의 물결을 어떻게 맞이하고 또 대처해야 할 것인가?외세가 강요한 동족 대결의 부끄러운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항구적 평화와 통일을 이뤄 민족웅비의 축복의 길로 흐르게 할 것인가, 아니면 분단 대립으로 자멸하여 북은 중국으로 남은 일본의 세력에 편입되는 재앙의 길로 주저앉고 말 것인가. 민족의 운명을 가름하게 될 이 중대한 변화의 흐름을 어떻게 대처하고 고민하고 모색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동안 북한과 미국은 베를린 양자 접촉 베이징 2.13 타결에 이은 최근의 뉴욕 양자 실무회담 등에서 미국이 북한 대표에게 보여준 의전상의 성의, 양자회담 직전에 이뤄진 비공개 모임에 등장한 미국 외교 실세들, 그리고 네오콘 인사들의 반발 등등 부시 정부의 이번 행보가 전술상의 제스처가 아님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특히 키신저와 북한 대표와의 만남은 시사하는 바 크다. 그는 닉슨 정권 때 오랜 냉전의 상징, 죽의 장막을 뚫고 미-중 수교를 이뤄낸 미국의 주류 보수세력이 믿고 있는 외교 원로이자 최근 변한 부시의 대 한반도 정책을 조언한 막후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2.13은 한국의 국내 정치 지형에도 지각 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50년 넘게 이어져 온 분단-대결 구도에서 기득권을 갖고 있는 현상유지 세력과 현상 타파로 활로를 찾아온 민족주의 세력간 대립-갈등 구도의 한국 정치판에 어떤 변수로 작용하게 될 지 관심사로 되고 있다.민족 화해 세력에 정권을 빼앗기고 와신상담 10년만에 롤 백을 눈앞에 두고 있는 보수세력에
대해 난데없는 이 북-미 화해의 물결은 충격으로 되고 있다.

국내 냉전 세력들은 존립 근거가 뒤흔들리는 혼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야당 지도부는 지금 심한 정체성 혼란을 겪으며 대북정책을 화해 기조로 바꾸고 있다고도 한다. 그들은 지금 부시대통령을 공개적으로는 아니지만 다 된 밥에 재 뿌리고 있다며 속으로 욕하면서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그런가 하면 보수 언론의 지원을 받은 야당의 집요한 공세로 빈사상태에 이른 여당측은 이번 2.13 기류를 남북 정상회담으로 연결시켜 정권 재창출에 이용하려 하는 등 양측은 민족적 이익보다는 당리 당략 차원에서 이 변화의 물결에 대처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미 양측이 베이징에서 한 약속을 성실히 지킨다면 반세기 이상 한반도를 덮고 짓눌렀던 얼음장은 풀리고 새 봄이 찾아올 것이다.
한국은 지금 세계 10위권 안팎의 경제력, 현대 무기로 장비된 막강한 국방력과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 체육, 문화를 가진 선진국의 문턱에 와 있다.
북한도 사회주의 진영의 붕괴 이후 온세계의 압력 아래서도 체제를 지켜낸 끈기와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 남북이 또다시 소모적 대결로 민족 에너지를 낭비할 것이 아니라 역량을 합친다면 그 힘은 배가 되어 코리아는 세계로 웅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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