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100주년

2007-03-1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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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석(뉴욕그리스도의교회 목사)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시조 누구의 몇 대 손 하면서 그 집안의 일원이 된다. 이 몇 대 손이란 숫자에 의하여 다른 친척들과의 서열관계가 정립된다. 물속 깊이를 잴 때는 한 길 두 길 하면서 사람의 키를 기준하였고 포목을 잴 때는 한 발 두 발 하면서 양 팔의 길이를 기준으로 하였다.

숫자는 우리에게 수많은 정보를 제공하면서 우리의 삶 속 깊이 있다. 그래서 많은 숫자를 좋아하면서도 때로는 적은 수를 좋아하기도 한다. 앞서 나가는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더 뛰어 넘고 싶겠지만 어떤 분야에서든 일등은 유지하기가 힘들 것이다.우리는 기념할 만한 일들을 기다리고 축하한다. 해마다 생일이 되면 축하를 하고 해가 바뀌면 새로운 다짐을 하며 입학과 승진과 결혼기념일과 회갑일을 결코 잊지 않는다.


아무리 숫자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더라도 12월 31일과 1월 1일은 느낌이 다르다. 어떤 특정한 숫자를 통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민족마다 좋아하는 숫자가 있고 싫어하는 숫자가 있다. 성경 속에서도 숫자 하나 하나가 의미가 있을 정도이다. 아무튼 어린 왕자의 고백처럼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 숫자 만큼 행복을 나누려고 한다. 숫자를 통하여 기념하려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수가 주는 의미보다도 근본을 잊어버리고 숫자에 얽매일 때가 있다.

2003년에는 미주한인 이민 100주년을 지냈고, 2007년에는 평양 대 부흥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다. 또 한번 숫자 앞에서 우리는 새롭고 놀라운 결심을 하면서 무엇인가를 기대한다. 즉 기념비적인 사건을 만들어내자는 것이다.그러나 따지고 보면 100주년이 되어서 한다는 생각부터가 문제라 생각한다. 99년일 때는 조용하다가 꼭 100년이 되어서 일을 만들고 행하려고 하는 것이다.

사람은 매일 매일이 있고, 그 날 그 날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평생에 한번 있을 잔치를 위하여 평생을 굶고 지낸 사람과 같은 행동을 서슴치 않는다. 숫자를 중요시 하다보면 근본을 잊어버릴 때가 있다. 숫자를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중요하고 똑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록이 갱신할 필요가 있다면 온 힘을 다하여 만들어내고 행하여야 하지만 그렇지 않고 다만 기념하기 위해서라면 오늘이라는 날도 중요하다.

100주년이라는 역사 속에서 또 하나의 획을 긋기 위하여 준비하는 모든 일도 순간 순간 중요하다는 것이다. 과거는 역사이고, 미래는 신비이며, 오늘은 선물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를 선물(Present)라고 부른다. 하루라도 기념비적 사건임을 기억하면서 귀중하고 복되게 살아가야 한다. 아름다운 행적은 또 하나의 좋은 숫자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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