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금지된 장난

2007-03-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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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현(컬럼니스트,뉴욕교협)

통기타를 배우던 중학생 시절, 핑거 스트링 연습곡으로 단조로운 리듬이 반복되는 ‘로망스’라는 곡이 있다. 이 곡은 르네 클레망 감독 프랑스 영화 ‘금지된 장난’의 주제곡인데, 흑백 스탠다드로 1952년에 제작된 이 영화는 전후에 제작된 대표적인 반전(反戰)영화로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다.

독일군의 폭격 와중에 피난민 대열에서 부모를 잃은 여섯 살 박이 여자아이가 어느 남모르는 시골집에 흘러든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는 소녀의 모습은 2차대전 후 폐허 속에서 복구작업을 하던 유럽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 집에는 또래의 사내 아이가 있었고, 남자답게 부모를 잃고 우울해하는 소녀를 위로하고 잘 보이려고 각종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천진한 꼬마들의 ‘파피 러브(Puppy Love)’는 한 편의 서정시처럼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인류의 모습이다.

여자애가 십자가를 좋아한다는 것을 안 사내녀석은 온 동네의 십자가를 다 모아다가 죽은 동물들의 묘지를 만든다는 것이 이 영화의 대강 줄거리이다.아이들의 장난에도 금지된 것이 있는 것처럼, 이 세상의 게임의 법칙에도 금지된 것들이 있다. 그런데 요즈음 뉴욕지역의 동포사회에서는 기본적인 룰을 벗어나는 지나친 분쟁들이 일어나서 동포들을 부끄럽게 하고 있다.

2007년 새해 벽두부터 뉴욕한인회가 뉴욕한국일보에 대한 불매운동과 광고 거부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 요즈음의 화두이다. 분쟁이 시작된 가장 큰 이유는, 코리안 퍼레이드 주도권에 대한 쟁점으로 시작됐다. 20여년 동안 뉴욕한인회 주최, 뉴욕한국일보 주관으로 시행해 온 뉴욕한
인동포들의 대표적인 행사인 코리안 퍼레이드를 뉴욕한인회에서 주도적으로 행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뉴욕한인회는 동포 일간지 보이코트를 시작해서 불매운동에 이어 최근 광고 거부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도가 오히려 뉴욕한인회의 입장을 어렵게 할 것이다. 언론의 자유와 권리는 이상한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억압을 받으면 더 멀리 확장되어서 비밀을 더욱 넓게 폭로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그 탄압자를 분쇄하는 ‘부메랑 효과’가 있다는 것은 역
사가 증명한다.

70년대 유신시절에 본인은 고등학생이었다. 당시 박대통령의 유신체제를 치열하게 반대하던 동아일보에 공권력이 개입돼 기자 강제 해직 사태와 광고주에 대한 방해와 탄압 사태가 발생,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탈했다. 그러자 동아일보의 재정을 돕기 위해 시민들의 후원금이 답지했고, 본인도 당시 대표를 맡고있던 기독교 서클 학생들과 용돈을 모아 학교 마크가 든 유료 광고를 게재했던 기억이 새삼 자랑스럽다.

그 결과 한달 동안 버스표 살 돈이 없어 왕십리에서 청운동까지 두 시간 이상 통학 거리를 걸어다녀야 했지만 힘든 줄 몰랐었다. 그 시절, 학교 옆 청와대 정문 앞에는 탱크가 두 대 서 있었지만 얼마 안 가 결국 유신체제는 붕괴되고 말았다.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금지된 장난’은 무엇인가? 강아지 사랑인가, 십자가 놀이인가? 아니다. ‘전쟁’이야 말로 금지된 장난이다. 뉴욕한인회장은 동포 언론사와의 분쟁을 종식하고 임
기중에 지혜롭게 마무리해야 한다. 그리고 4월에 있을 뉴욕한인회장 선거에서 정 동포들로 하여금 새 회장을 선택하게 해야 한다.

한인동포들은 동포들간에 분쟁을 원하지 않는다. 동포 언론사와의 분쟁이야말로 ‘금지된 장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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