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우리의 역사를 지키려면

2007-03-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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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중국의 동북공정에 자극받아 한국의 역사 지키기 작업이 활발해 지고 있다. 우선 고조선의 건국이 역사적 사실로 고교 국사교과서가 개정된다. 즉 좥삼국유사와 동국통감에 따르면 단군 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고 한다(BC 2333년)좦는 종전의 기술을 좥…건국하였다(BC 2333년)’로 고친다는 것이다. 또 일본과 중국의 역사 왜곡과 미화에 대처하기 위해 좥동아시아사’를 2012년부터 고교에서 가르치기로 했다는 것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아득한 옛날 상제(하느님)의 서자인 환웅이 인간세상을 다스리고 싶어하여 태백산에 내려왔다. 환웅은 곰이 변신한 웅녀와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다. 후에 단군이 아사달에 도읍하여 나라를 세워 조선이라고 했는데 이 때가 요제 50년이라는 것이다.


우리민족은 북방민족인 몽고족의 한 갈래로 만주지방을 거쳐 한반도로 내려왔을 것이다. 그런데 기록이 없던 상고시대에는 그런 자세한 경로가 전해지지 않은 채 하느님의 자손으로 시작된다. 이와같은 신화는 많은 민족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우 8세기 초에 편찬된 좥고사기좦와 좥일본서기좦는 1300년이나 거슬러 올라가 일본의 기원을 신화적으로 쓰고 있다. 이에 따르면 태양의 여신인 천조대신의 손자가 하늘에서 내려왔는데 그의 손자가 BC 660년에 처음으로 제위에 오르니 곧 제 1대 천황인 신무천
황이라는 것이다. 신무천황은 천황이 되기 전에 가솔들을 모아놓고 “우리 선조가 하늘에서 내려온 지 어언 179만2,470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동쪽의 백성들이 신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으니 이들에게 평화의 혜택을 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동쪽을 정벌한 후 천황에 올랐다는 이야기다. 이것도 기록은 물론 고고학적 자료의 뒷바침도 없는 허황된 신화인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BC 600년경에 하나님의 천지 창조 이후 아브라함에서 시작되는 자신들의 역사를 썼다. 이 역사도 신화와 설화의 기록이다. 중국의 전설시대인 삼황오제 시대에 삼황의 하나인 여화(우연히도 이스라엘의 여호와와 비슷한 발음)는 흙으로 사람의 형상을 빚어 코에 생기를 불어 넣음으로써 이 땅에 사람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모든 민족의 신화는 아전인수격이다. 그러므로 어느 민족도 다른 민족의 성스러운 신화를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스라엘 민족의 신화와 설화는 기독교의 성경으로 채택되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이를 역사적 사실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신화가 아닌 역사로서 세계에서 가장 웅대하고 화려했던 민족과 나라를 말하자면 몽고족과 로마제국을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유라시아 대륙을 거의 모두 점령한 몽고족은 세계사상 가장 큰 제국을 건설했고 유럽과 중동, 북아프리카에 걸친 로마제국은 1000년간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그 몽고와 로마의 역사가 오늘날 몽고와 이태리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반면에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없는 미국이 오늘날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미국은 유럽에서도 밀려난 사람들이 몰려들어 살게 된 곳이고 영국의 식민지로 오랜 세월을 보내다가 독립한 나라이다. 그런데 이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부유하고 과학기술이 앞서게 되어 현대문명을 주도하는 나라가 되자 미국의 짧은 역사가 신화처럼 둔갑하였다. 아메리칸 인디안들의 멸망사는 미국의 서부 개척사가 되고 미국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실용주의가 이 시대의 금과옥조가 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어느 누구가 큰 인물이 되면 태몽이 어떠했고 풍수가 어떻다는 등의 말을 한다. 그러나 어릴 때 신동이라고 떠들썩했던 사람이 커서 큰 인물이 되지 못했을 때는 그의 과거는 묻혀버리고 만다.역사학자 E.H.카는 좥역사란 무엇인가좦에서 과거의 역사는 현재에 의해 평가된다고 보았다. 이에 한가지 덧붙이자면 과거의 역사는 현재가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우리의 고대사를 자기네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역사적 자료가 부족해서만이 아니다. 그 보다는 지금 우리에게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고구려가 분명히 우리의 역사이지만 그 영토의 대부분이 삼국통일 이후 중국의 땅이 되어버렸고 한반도마저 중국의 지배를 받아왔다. 지금 떠오르고 있는 중국의 세력은 한국을 압도하고도 남을 만하다. 이런 세력을 배경으로 작은 근거를 내세워 자기네 역사라고 우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역사를 지키려면 역사적 근거를 밝혀내서 인정받으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우리의 주장을 관철할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우리에게 물리적인 힘이 모자란다고 할지라도 오늘의 세계에서는 외교력이나 세계 여론을 움직이는 것도 큰 힘이다. 역사책을 다시 써서 우리끼리만 볼 것이 아니라 세계를 향한 역사 외교에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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