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해답은 사랑이다

2007-03-0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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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우리는 누구나 문제 가운데 삶을 살고 있다. 우리가 살아있다고 하는 것은 결국 문제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전제로 한 실로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문제들이 있다. 문명이 발달하고 인간의 삶이 과거 어느 때 보다 편리해 졌지만 우리들의 삶은 전보다 오히려 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 문제들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째는 끝없는 문제이다. 즉 어떤 문제가 생겼을 경우 그 문제가 해결된다 싶으면, 그 것이 또 다른 문제의 시작이 되곤 한다.

자녀가 대학에 들어가는 일이 큰 문제였는데 막상 대학에 들어가면 곧바로 등록금 걱정을 해야 한다. 자녀가 장성할 때 까지 고생하며 키워 결혼을 시켜놓고 이제는 자녀의 문제에서 벗어나는 가 싶더니 잘 살까, 헤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두 번째는 삶의 문제의 해답을 찾기가 어렵다. 문제를 놓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지만 문제의 가변성 때문에 마땅한 해답을 찾지 못해 늘 자신감을 상실하게 된다.


셋째는 모든 인간의 문제는 인간의 실존에 기인한 문제이다. 결국 우리가 문제를 떠날 수 없는 것은 우리의 문제는 인간성의 문제요, 인간 실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질이나 건강이나 소유의 문제보다도 우리에게 더 큰 문제는 인간성의 문제요, 인간관계의 문제요, 마음의 문제이다. 인간의 모든 문제의 근원은 결국 사랑의 문제로 귀결된다. 사랑이 변질되거나 사랑이 없거나 사랑이 식어서 발생되는 문제이다. 가정의 문제, 자녀의 문제, 부부문제, 이웃의 문제, 사회의 문제, 이는 대부분이 알고 보면 모두 사랑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우리 삶의 모든 어려움과 무거움은 환경의 문제나 소유의 문제이기 보다는 모두가 사랑의 문제이다. 인간의 삶은 늘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다. 그러나 우리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는 세상은 같은데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 것을 느끼는 사람들에 따라 문제의 강도가 달라지
게 된다.

하루를 힘들게 일하고 와도 따뜻한 가정의 사랑이 있고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더 나아가 우리 동포사회에 사랑이 있다면 이민의 삶도, 고달픔도 얼마든지 이기며 살 수 있을 것이다. 기쁨은 나누면 커지고 슬픔은 나누면 작아진다는 말이 있다. 이 나눔의 마음, 나눔의 정신은 곧 사랑의 마음이다. 이 마음은 다시 말해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다.

요즈음 그리스도인들은 사순절 기간으로 지키고 있다. 그래서 교회나 성당에서는 사순절 특별행사를 하고 있다. 사순절 기간이란 부활절을 앞두고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부터 부활절 전야(Easter Eve)까지의 주일을 뺀 40일 간으로 참회와 자기절제, 선행과 구제를 요구하는 기간이다.
사순절이란 결국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나눔의 마음을 가르쳐주고 있다. 나눔의 마음은 곧 사랑의 마음이다. 이 사랑은 자기 부정에서 온다. 그래야 나눔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부정이란 자신이 제한된 존재임을 아는 것이다. 재의 수요일에 참회자의 머리에 재를 뿌리는 의식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임을 알고 주어진 삶을 선행과 나눔의 삶으로 살아야 하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그러기에 나 자신을 살피고 나의 욕심대로 살아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는 일을 하지 아니하고 절제하며 사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곧 자기 자신을 살피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사는 것이 사랑이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진정한 사나이가 되려면 세 곳을 다녀와야 한다고 말했다. 첫째는 군대이고 둘째는 병원, 셋째는 감옥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이 세 곳은 자기의 내면을 볼 수 있고 성찰할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남자가 군대에 가서 고생을 해보면 자기가 얼마나 안일하게 살았는지, 병원에 입원을 해보면 자기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그리고 감옥에 가보면 자기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알게 된다고 했다.

지난달 27일 알프가니스탄 비그람 미군기지에서 폭탄테러로 숨진 다산부대 소속 고 윤장호 하사의 죽음은 나라를 위하고 가난과 전쟁의 두려움에 찌든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위해 군 복무 중 당한 죽음이다. 그러나 윤하사가 죽은 것은 자기를 부정하고 남을 배려한 사랑의 죽음이었다. 그러기에 그의 죽음은 더욱 우리들의 가슴에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사랑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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