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있을 때 잘 해…

2007-03-0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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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취재1부 차장)

최근 인기를 끌었던 한국의 한 드라마에는 어떤 할머니가 “있을 때 잘해~ 있을 때 잘해~”라는 어느 가수의 노래를 사투리로 구성지게 부르는 장면이 자주 등장했었다. 드라마를 제대로 챙겨보지는 않았지만 어느새 귀에 익숙해져버린 이 노래가사가 지난주 모처럼 가슴깊이 와 닿았다.

지난 달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기지에서 폭탄테러로 사망한 고(故) 윤장호(27) 하사의 추모예배가 열린 4일 오후 롱아일랜드의 한 교회를 찾았을 때 그를 기억하는 지인들이 떠올린 생전의 윤 하사 모습은 실로 ‘있을 때 주위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잘하며 살았던 인물’ 그 자체였다.


교회에서 만나 얼굴 보며 친구로 지냈던 6개월보다 10배 이상 긴 세월을 떨어져 지내면서도 또래 친구들과 연락하며 서로의 안부를 살뜰히 챙겼고, 교회 형·누나와 동생 등 선후배들에게도 늘 한결 같은 존재로 남아있었다. 13세 때 조기 유학 오기 직전인 1992년 졸업한 초등학교 6학년 담임교사와도 최근까지 연락을 주고받으며 끈끈한 사제지간의 정을 이어온 인물이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 파병근무 중에도 크리스마스이브 때 전우들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종이로 접어 만든 양말에 초코파이를 한 개씩 넣어 관물대에 일일이 붙여뒀던 일은 누가 봐도 눈물 나는 잔잔한 감동이 아닐 수 없다.
바쁘다는 핑계로 바로 옆에 있는 가까운 사람 하나 챙기는 일도 버겁고 때론 귀찮게 여겨지는 것이 현대인의 일상인데 그는 자신보다는 진심으로 남을 먼저 배려할 줄 알았고 이를 실천하는 데에도 절대 게으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들이 아닐 수 없다.

자원입대를 결심한 후 해외파병에 지원해 두 차례 떨어졌다가 세 번째 도전해 성공해서까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했던 그였기에 벌써 적어도 한두 번쯤은 나왔을 법한 조기 유학 경력에 대한 한국 여론의 비판도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의 죽음을 놓고 네티즌들조차 그들의 단골메뉴였던 ‘악플(악성댓글)’ 하나도 달지 않고 애도의 물결로 넘쳐나기까지 했다.

그는 삶의 반평생을 보냈던 미국이 주도한 전쟁 때문에 결국 한국군 파병군인으로는 첫 번째 희생양이 되고 말았지만 아직 이 땅에 살아남아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는 우리들의 가슴 가슴마다 또 다른 사랑의 씨앗을 심어주었다. 눈발이 펑펑 휘날리는 5일 뉴욕의 거리를 바라보고 있자니 한동안 잊고 지냈던 지인들의 안부가 문득 궁금해진다. 있을 때 좀 더 잘 챙겨줄 것을 그랬다는 때늦은 아쉬움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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