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국가만 부르면

2007-03-0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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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준재(내과전문의)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으로 시작하는 애국가를 부르면 끝을 잘 맺지 못한다.

중간쯤에서 왠지 모르지만 가슴이 떨리기 시작하고 메어지는가 하면 목소리가 떨리고 눈시울이 촉촉해지다 애국가는 거의 끝나 ‘우리 길이 보전하세’에 이르러서는 혼자 중얼거리다 끝난다.애국가를 내 평생 한두번 부른 것도 아니고 단체활동 할 때는 프로그램의 시작을 꼭 애국가 봉창으로 시작하며 수없이 불러왔는데 떠나온 조국의 국가(國歌)인 애국가만 부르면 이런 현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보고 있다.


어떤 때는 대한민국이라는 단어와 애국가라는 말을 들어도 이제는 노래를 부를 때와 같은 현상을 맛보고 있다. 이 이야기는 그런 현상에 관한 하나의 경험적 기술이다.1주일 전쯤, 모교의 대선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대학의 전공은 다르지만 서로 익히 아는 사이다.이야기의 시작은 지난 2월 7일에 뉴욕한국일보에 게재된 나의 졸문 ‘한국정원 조성 이대로 둘
것인가’가 빌미가 되었다. 글이 계기가 되어 만남으로 이어지고 만남에서 1986년부터 퀸즈식물원에 ‘동양 정원’(Oriental Garden) 설립의 염원이 있었다는 매스터 플랜을 보았을 때 깜짝 놀랐다.

놀라움은 흥분으로, 흥분이 지나자 정교한 청사진의 설계도 전문성에 고개 숙이는데까지 이르렀다.사실 퀸즈식물원 후원회의 출발은 여러가지 목적을 이면에 깔고 있었지만 궁극적으로는 파리나 LA의 식목원처럼 한국정원 설립에 있었다. 그것은 마치 채널 13 한인후원회가 1994년 발족한 후 5년 후인 1999년 3월 18일에 채널 13을 통해서 미주지역에 처음으로 우리의 삶을 긍정적으로 다뤄준 다큐멘터리, ‘한인들의 정신(Korean-American Spirits)’의 성사와 같은 길을 걸으려 했다. 눈에 보이고 만져볼 수 있는 구체적 결과를 목적으로 했다는 말이다. 그것을 직접 가시적으로 설계도를 보았을 때 나의 흥분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또 한 분의 모교 선배이자 전문 설계사의 손을 거친 칼러판 조감도는 나의 뇌리에 각인되고도 남았다.떨림과 흥분의 2시간여의 만남은 끝나고 구체적 실천사항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나의 생각은 거기에 함몰되고 있었다.
그런 차제에 선배님과의 대화가 시작된 것이다. 대화 도중 선배님이 유학생으로 미국을 오셨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지만 애국가에 관한 경험담을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같은 배를 타고 같은 정서 속에 살고 있구나 느끼며 전화 대화하면서 선배님의 말씀 도중 목소리가 떨림을 감지했고,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려오고 목이 잠겨짐을 느끼며 대화를 겨우 끝냈다.나이를 뛰어넘어 세월을 30년이나 40년이 지난 후에도 우리는 애국가라는 말 한마디에 이렇게 가슴 떨려야 하는가?

새벽비가 창을 때리고 있는 지금 혼자 묻고 있다.조국을 떠나 살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는 흔한 말로 차치해 버리더라도 조국 대한민국에 대한 사랑은 우리가 여기에 사는 동안은 기리기리 보전해야 되고 그렇게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천착하고 또 천착해야 하지 않을까?‘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우리 길이 보전’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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