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유머의 세계

2007-03-0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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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이런 생각을 해본다. 부자 중에는 유머 부자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책 부자, 생각 부자, 웃음 부자, 유머 부자자도 그럴듯하게 생각된다. 가끔 주위에서 듣게되는 유머는 분위기를 바꿔 놓는다. 험악하거나 어색하거나 긴장되거나 거북하거나 예민한 공기를 분무기를 내뿜어서 한 번에 바꿔 놓는다.

유머와 넌센스는 다르다. 유머가 익살스러운 농담, 해학, 지적인 기지로 이해된다면, 넌센스는 무의미한 말, 헛소리, 어리석거나 터무니 없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유머가 잔잔한 웃음을 자아낸다면, 넌센스는 허탈한 웃음을 웃게 만든다. 유머가 깊은 생각이 바탕에 깔렸다면 넌센스는 사려가 깊지 않은 사람의 혀 끝에서 나온다. 가끔 본인은 유머라고 생각한 발언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은 그것이 넌센스였기 때문이다.한국의 문화 속에 푹 녹아있는 해학 즉, 익살스러우면서도 풍자적인 말이나 몸짓은 그게 바로 유머라고 본다. 이렇게 풍부하던 유머가 세태의 변화에 따라 자취를 감추고 말이나 행동이 벌거숭이가 되어서 상호간에 예리한 각을 세우게 된 일이 퍽 애석하다.


지난번 제 7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한꺼번에 받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상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십시오’라고 말하였다. 이 한마디는 그동안 감독상 후보 여섯 차례, 각본상 후보로 두 차례나 올랐지만 상을 놓쳤던 그가 드디어 오스카 트로피를 안게 된 기쁨을 여실히 알리고 있다. 순간적인 그의 발언에 유머 감각이 넘쳐 흐른다.
괴한에게 습격당해 부상을 입은 레이건 대통령이 그의 안부를 염려하는 국민들에게 ‘내가 몸을 구부리는 것을 잊었었다’고 던진 말은 어떠한가.

언젠가는 이런 글도 읽었다. 부시 아버지 대통령이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면 엘리자베스 여왕을 뒤따르는 필립공처럼 클린턴 전 대통령이…’라는 말을 한 것이 보도되었다. 얼마나 재미있는 유머인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발표되었을 때 점잖함을 덕목으로 삼는 한국인이 외국인을 상대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들은 중요한 자리에서도 끊임없는 유머감각을 구사하면서 문제 해결에 매진하는 습성이 있다. 그런데 반 사무총장을 염려한 것은 기우였다.그는 뛰어난 재치와 유머 감각으로 뉴욕에서 열린 유엔출입기자단 송년 만찬회에서 청중을 사로잡았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 이어 연단에 오른 반 총장이 마이크를 잡고 ‘클린턴 뒤에 연설하는 건 프랭크 시나트라 뒤에 노래하는 셈’이라고 비유하였다. 얼마나 탁월한 유머 감각인가.

여기에 유머의 특선작품이 또 하나 있다. 미국 당대의 유머리스트 아트 버크왈드가 남긴 것이다. 비크왈드는 자유기고 칼럼니스트로 지난 50년 동안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인터내셔널 해럴드 트리뷴 등 미국의 주요 신문 칼럼을 통하여 부자와 유명인, 정치인들을 통렬하고 유머러스하게 풍자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독자 여러분, 호스피스 병동에서 이 글을 씁니다. (예상 수명을 넘기고도)6주가 지났는데도 아직 살아있습니다. 메디케어의 혜택을 나보다 더 잘 받은 사람이 있을까요. 이곳에서 나는 아름다운 거실에 앉아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인생 최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심지어 맥도널드 햄버거와 밀크쉐이크까지 사다 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유머리스트이기 때문에 다가오는 죽음을 넉넉한 마음으로 평화롭게 유쾌하게 맞이할 수 있었다. 유머가 없는 듯 하면서 거기에 가득 찬 유머를 느낄 수 있다. 특출한 유머리스트 다운 끝마무리를 한 것이다.

유머는 이런 것이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게 만든다. 소리내어 웃음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 스며드는 웃음과 즐거움을 안겨주는 묘약이다. 유머는 인생을 관조하는 넉넉함 너그러움 없이는 생산되지 않는 고급스러운 마음의 표현이다. 말의 명품 1호이다.
유머가 넘치는 세상에서 얼굴에 웃음을 띠며 따뜻한 손을 마주잡은 채로 살고 싶다. 헛똑똑함을 과시하려고 뾰족한 말을 주고 받음은 자타를 해친다. 서로 너그러운 유머를 주고 받을 때 평화로운 우정이 우리를 에워싸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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