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무관심

2007-03-05 (월)
크게 작게
여운기(목사)


얼마 전에 유럽의 어떤 신문기자가 ‘모하메드’의 초상화를 희화화 하고 신성모독했다 해서 세상이 한번 떠들썩한 일이나, 작금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웃지 못할 이슬람 종파 분쟁의 사례들은 바로 그같은 사건들에 대한 경각심을 더해주고 있다.

‘별거 아닌 일에 열 받는다’는 말이 있다. 가령, 기독교를 인정하지 않는 불신자(不信者)가 집구석에 굴러다니던 성경책을 화장실에 두고 일 볼 때마다 한 장씩 찢어서 일을 처리했다 해서 그것이 뭐 그리 대수러운 일이 되겠으며 신성모독죄가 되고 데모까지 벌여야 할 사건이 되겠는가 말이다.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들에게는 귀하고 귀한 책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한 장의 휴지조각이 아닌가 말이다.


언제나 이웃을 향해 너그럽지 못한 마음에는 남을 헐뜯고, 비판적이며, 파괴적인 각박한 심성이 자리잡게 마련이다. 이같은 부조리한 시대적 토양에서 독버섯처럼 머리를 내밀기 시작한 것이 ‘불간섭주의’란 현대인의 병폐이다.너는 너요, 나는 나,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아비는 아비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살아가는 소위 함께 살아가며 극단적으로 고독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여기에서 결정적으로 현대인에게 다가온 것은 ‘무관심’이란 단어이다. 이 말의 뜻은 ‘무정하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유명한 단편 속에 이런 글을 읽은 일이 있다. ‘사랑의 무덤은 이별도 죽음도 아니요 무관심’
이라고. 자녀에 대한 부모들의 관심과 무관심의 형평성은 그들의 장래를 좌우할 만큼 중대한 요인이 된다고 한다.들리는 말에 의하면 한국부모들 만큼 자녀교육에 열을 올리는 민족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그같은 열의도 자녀를 위한 것이 아니고 자기의 야욕에서 출발된 ‘간섭’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결코 교육이 아니라 자기 집착에 불과하다.

요사이 한국에서 자녀 한 명을 기르고 공부시키려는데 소요되는 비용이 맞벌이 부부 한 사람의 수입 전부를 투자해도 부족하다고 한다. 방목하듯 많이 낳아서 밥만 먹이면 절로 자라나던 옛날에 비하면 지금은 양반이지만 이제는 한국의 젊은 부부들이 비용이 무서워서 아예 아이를 낳는 일 자체를 꺼려한다니 그것 또한 문젯거리가 아닐 수 없다. 엊그제 TV를 통해 한국 문화계 소식을 접하는 중에 요새 상영되는 TV 연속극 중 자녀 결혼문
제를 두고 부모자식간의 갈등을 묘사한 연극이 70%를 차지한다고 하니 우리나라 부모들의 자녀 간섭도 그 한계를 넘어선 듯 싶다.

물론 세상에는 우리들의 관심과 적극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크고 작은 일들이 많이 있다. 이런 때에 결코 내가 무관심할 수 없는 일에 선뜻 발벗고 나서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성경에서 예수는 ‘선한 사마리아인’이라는 한 토막의 짧은 비유를 통해서 강도를 만나 죽기 직전에 있는 사람을 모른 체하고 지나쳐버린 종교인과 지식인을 정죄했다.

벌써 수년째 접어들지만 미국의 부시대통령은 현대적 압제자들에게 고난을 당하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북한의 백성들을 차마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어서 칼을 들었다가 남의 일을 간섭하기 좋아하며 전쟁을 즐기는 전위주의자로 낙인 찍히고 미국의 반전주의자들의 호의를 입은 민주당이 결국 상하원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백악관의 대세는 기울고 칼자루를 쥔 자들이 이라크로부터 전군 철수를 요구하는 의회 결의만 남겨놓고 있는 이 때에 그는 2만5,000명의 바그다드 증원군을 요구하면서 상상을 불허하는 천문학적 숫자의 전비를 요구하고 나섰다.물론 부시대통령이 자기 입으로 시인했듯이 이 전쟁은 성공하기 어려운 전쟁인지 알 수 없다.

그리고 혹 그가 패배자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 것인지도 나는 모른다. 그러나 끝까지 그와 함께 기록되어야 할 한가지 값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압제자들 밑에서 숨도 쉬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죽지 못해 살아가는 지구 저편에 사는 백성들을 향한 연민(Sympathy), 그것이며 그것은 언제나 정치나 경제, 그리고 전쟁의 승패를 넘어서 저 높은 곳에 존재하는 인류를 향한 ‘Passion’ 그것이다.지난날 600만의 유대인들이 가스챔버에서 차근차근 죽어갈 때 돌아서 눈을 감았던 세계인들은 오늘도 돌이킬 수 없는 ‘홀로코스트’의 수치스러운 역사를 통탄하고 있지 아니한가!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3만4,000명의 꽃다운 젊은이들은 결코 남의 일에 간섭하는 무법자들이 아니라 인류를 사랑하는 Passion을 가진 숭고한 미국의 자유시민들이었다.지나친 관심도 문제이지만 관심을 두어야 할 일에 대한 무관심은 세상을 더 슬프게 하는 요인임에 틀림 없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