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북한이 정말 핵을 포기할까

2007-03-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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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동서고금을 통해 국가가 존립하고 번영하는 기본정책은 부국강병책이다. 국민이 배불리 먹을 수 있고 강한 군사력으로 국방을 할 수 있고, 나아가서 그 여력으로 국토를 넓히거나 영향력을 확대할 때 국가의 번영을 이룰 수 있다. 평화시에는 경제만 잘 되어도 강한 나라가 될 수 있지만 평화가 깨어질 때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강력한 군사력이 없으면 강한 나라가 되지 못한다. 그리고 평화라는 것 자체가 힘이 없으면 지킬 수 없는 것이니 한 국가에서 군사력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가 된다.

북한이 이른바 선군정치를 부르짖으면서 군사력 강화에 열을 올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정치에서 군사력을 최우선으로 하는 선군정치가 핵무기를 개발하여 국제문제를 일으켰다. 북한이 만약 이와같은 군사력 조차 없었더라면 지금처럼 강대국들이 6자회담을 하려고 애를 쓰지 않았을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체제를 유지하지 조차 못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북한의 선군정치는 자신들의 생존책인데 다만 부국을 바탕으로 한 강병이 아니기 때문에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붕괴의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북핵문제를 풀기 위해 진행해 온 6자회담에서 해법으로 마련한 2.13 합의를 보더라도 북한이 얼마나 핵개발의 덕을 보았는지는 여실히 알 수 있다. 북한은 앞으로 핵개발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6자회담 당사국들로부터 에너지 지원, 경제원조를 받게 되었고 미국으로부터 체제 보
장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남북관계에서 공세적 입장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된다면 북한이 핵카드 하나로 얻게 되는 이득이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다. 북핵 6자회담이 북한에는 엄청나게 ‘남는 장사’이고 다른 나라들에게는 ‘밑진 장사’인
셈이다.

그런데 이처럼 큰 댓가를 받게되는 북한이 정말로 핵을 포기할 것인가. 6자회담의 당사국 정부나 관계자들은 이번 2.13 합의로 북핵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것으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다만 핵실험장 폐쇄, 고농축 우라늄 개발, 기존 핵무기의 폐기 등 몇 가지 쟁점사항이 세부적으로 합의되기만 하면 북핵문제는 해결된다고 본다. 그러나 그렇게 보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북한이 지난 1994년 제네바 합의에서도 똑같은 식으로 거래를 한 후 비밀리에 핵개발을 해 왔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런 의심은 가질만 하다.

사실 경제적 댓가를 주는 조건으로 핵무기, 즉 군사력을 포기한다는 거래는 균형이 맞지 않는 거래이다. 예를 들어 사나운 호랑이에게 앞으로 먹이를 줄테니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뽑아버리라고 한다면 그 말을 듣겠는가. 지금 당장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이니 먹이를 얻기 위해서 뽑아버리는 시늉은 할 것이다. 그러나 이빨과 발톱을 뽑아버리면 생명이 위태로워질테니 호랑이가 미치지 않고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이럴 때 만약 나는 발톱을 뽑을테니 너는 이빨을 빼라고 한다면 그럴듯한 거래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군사력을 중요시하는 것은 북한만이 아니다. 민주주의와 자유평화를 금과옥조로 삼는 미국은 세계 제일의 군사대국이다. 세계 최대의 핵무기 보유국이며 엄청난 예산을 군비에 쏟아넣고 있으며 첨단무기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제분쟁이 발생하면 군사 개입으로 사태 해결을 시도한다. 미국에 이어 중국과 러시아도 군사대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한국이 통일되면 군사력이 필요 없게 될까. 그렇지 않다. 통일 한국의 독립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아직도 전시상태인데 작전권 전환이니, 군복무 단축이니 하고 군사력을 줄이겠다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북한은 결코 돈 몇 푼에 선군정치를 팔아먹지는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6자회담의 성과로 북핵이 폐기되고 사찰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제네바 합의 이후처럼 핵개발이 비밀리에 진행될 수 있다. 또 사찰활동의 강화로 비밀활동을 막을 수 있다고 해도 북한이 현재 축적해 놓은 핵기술과 지식은 말살할 수 없다. 북한은 언제든지 핵개발을 다시 하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북한이 경제지원으로 부국이 된다면 강병을 하는 것은 더욱 쉬워지게 된다.

그러므로 현재의 6자회담에서 북핵 사태가 재연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완전한 대비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핵 폐기니 핵 동결이니 하는 것은 결국 미봉책이 되고 만다. 이런 미봉책은 현재의 위기를 연기시켜 현재 정부관계자들이 책임을 차기로 떠 넘기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만약 북핵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북한이 핵개발을 재개할 경우 6자회담 당사국들이 경제제재 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 제재한다는 강력한 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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