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대되는 한인원로들의 움직임

2007-03-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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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현(컬럼니스트, 뉴욕교협)

‘원로들의 지혜’란 보석처럼 소중한 것이다. 삶의 경륜 속에서 경험하고 발견된 것을 갈고 닦은 것이 원로들의 지혜라고 하겠다. 비유하자면 나이드신 어머니의 김치 담는 솜씨를 젊은 딸이 하루아침에 흉내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솜씨 좋은 어머니 밑에서 자란 딸이나 시집
살이 한 며느리는 언젠가는 어머니 못지않는 요리사가 될 것이 확실하다.
인간이 영장류의 동물들과 다른 특징 중에 하나는 지혜와 경험을 계승하고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그러한 일련의 전승작업을 통해서 문명이 발전하고 문화가 형성되는 것이다.

동포사회의 다난한 현안들을 지도하고 권면하기 위해서 최근에 ‘뉴욕한인 원로 포럼’이 조직되어서 활동을 시작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특별히 고향을 떠나 이민생활을 하는 동포들에게는 꼭 필요한 기구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매사를 주류사회 행정기구나 사법기구에 들고 나가
서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대부분 소수민족들의 내부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 정부기관에서는 개입하려 하기 보다는 자체 내에서 조정하고 합의해서 해결하기를 바라는 입장이다.


어떠한 문제이든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이해 당사자들은 화해해서 합의에 이르기까지 생각처럼 쉽지 않은 것이다. 바로 이러한 때에 원로들의 개입과 조언이 필요한 것이다. 원로들은 현역은 아니다. 주어진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온 분들이 현장에서 한 발 물러나서 생활하다
가 현역들간에 ‘삶의 자리’에서 분쟁이 생기고 문제가 생겼을 때 개입해서 조정하고 지도하는 입장이 되는 것이다. 때로는 재판정의 배심원처럼 판단하고, 합의를 통해서 해결사의 역할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어느 나라에서나 원로들의 집단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구약성경에는 “장로의 수염에 맺힌 물방울이 헤르몬 산의 이슬처럼 아름답다”고 노래하고 있다. 그 옛날 뿐만 아니라 수 천년간 이민생활을 하고 있는 유대 사회에서 장로들의 결정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그들의 결정에 반발하는 자손에 대해서는 영원히 집단에서 추방하기도 했다. 전통과 율법을 수호하고 민족의 순정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징계도 필요했던 것이다.

고대 로마공화국을 이끌어가는 최고 기구는 로마의 중심지 ‘캐피톨’-캐피탈의 어원-언덕에 위치한 원로회와 민회였다. 당시 원로회는 고관을 지낸 귀족회의 성격이었고 민회는 평민 대표들로 구성됐었다. 그 민회가 열리는 광장을 ‘포럼’이라고 불렀다. 국가의 중요한 결정은 원로
원과 ‘포럼’에서 이루어졌고 그것은 초강대국으로 성장하는 기반이 됐다. 두 기구의 합의에 따라서 수많은 영웅들이 탄생하고 사라져 갔다. 유명한 줄리어스 시저에게 최고집정관의 절대권력을 부여한 곳도 그곳이고, 협살이 이루어진 곳도 그곳이었다.중국에서도 원로들은 역사의 올바른 방향을 지도해 왔다. 100년 전 중국대륙의 혁명을 주도해서 이끌어 온 조직이 ‘가로회’라는 전국적 원로 그룹과 해외이민단체인 중국교민회였었다.

19세기 말엽 최초의 미국 이민자로서 첫번째 세례를 받은 중국 화교인 찰리 송의 세 딸들이 중국혁명에 있었던 것은 드라마같은 역사이다. 그녀들은 각각 손문의 부인, 장개석의 부인으로, 모택동의 후견인으로 혁명의 중심에 있었다. 중국 화교들의 이민역사는 200년이 넘어서 이민단
체의 힘이 국가의 체제를 바꾸는 역동적인 역할을 이미 100년 전에 했던 것이다.오늘날 재외에 거주하는 한인동포들이 한민족 총원의 10분의 1인 700만에 달한다고 한다. 이민의 현장에서 수십년 경험을 쌓은 분들이 원로로서 당당히 후손들을 지도해야 할 시점이다. 그래서 한민족의 후배들이 전세계 방방곡곡에서 깊이 뿌리내리고 열매 맺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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