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눈 높이

2007-03-0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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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재옥(의사)

TV를 볼 때는 눈높이에 맞추어 보아야 한다. 벽에 높이 걸어놓은 그림은 모양새는 좋지만 오래 보노라면 목 관절을 손상시킬 수 있다.
‘뱁새가 황새 걸음 흉내내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속담처럼 관절의 운동 한계를 벗어나면 탈골이 될 뿐 아니라 신경을 눌러서 통증과 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 유한한 인간의 관절은 운동 한계 테두리 안에서만 움직임이 가능하다.

작년 11월 후드산에서 조난당한 3명 중 한명은 한국계이다. 모친 김여사의 흐느낌을 볼 때 내 마음도 뭉클했다. 또 갑작스런 기후의 변화로 눈속에 파묻혀 버린 오레곤주 김군의 슬픈 얘기도 엊그제 같다.빤히 보이는 한라산도 정상에 오를수록 예측할 수 없는 험한 비바람에 접하게 되는데 하물며 후드산의 정상은 산소가 희박할 뿐 아니라 겨울에는 산 전체가 얼음에 덮여 꽁꽁 얼어붙었을 것이다. 즉 인간의 생존 한계를 벗어난 신의 영역에 접어드는 것이다.


1977년 한인 최초로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오른 고상돈은 2년 후 맥킨리산에서 내려오다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 산행에서는 오름보다 내리막에서 사고가 잦다. 인생의 하향길도 예외는 없다.황혼 짙은 서안에 무사히 도착함도 축복 중의 하나이다. 유도에서는 낙법이 제일 중요하다. 떨어질 때 머리를 보호하며 안전하게 넘어졌다가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서는 동작이다. 도장에서는 항상 처음 30분은 지루할 정도로 무조건 낙법만 계속 반복 연습시킨다. 안전하게 떨어지는 법을 배우지 않고는 승마나 심한 경기를 해서는 안된다. 수퍼맨도 낙마 후 전신 마비가 되었다.

풋볼에서도 공격보다 수비 잘하는 팀이 승리하는 것이 통례이다. 중국 고서에는 하루 전투에 투입하려고 10년 양병한다고 했다.
10년 이상 힘든 공부와 수련을 끝내고 개업한 산부인과 의사가 단 한번의 실수로 MAL PRACTICE 소송에 휘말려들어 폐업함을 더러 본다. 환자의 예후를 미리 감지하는 자기의 한계를 아는 의사를 우리는 명의라고 부른다. 즉 신의 영역을 비켜가는 의술이겠다. 평생 애쓴 보람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자.

소련에서 인공위성을 처음으로 궤도에 진입시킨 후 이제는 인간이 신의 영역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고 신은 죽었다고 했으나 사실은 신의 세계 우주에 조금 더 가까이 접근했을 뿐이다. 유한한 동물이 신의 영역에 얼마만큼 도전해야 하는가. 아니면 신의 계시와 섭리를 무조건 기다려야만 하는가. 창조설 vs 진화론의 공박은 언제 매듭을 지을 것인가.“풍파에 놀란 사공 배 팔아 말을 사니 구절양장이 물보다 어려워라. 두어라 물도 뭍도 말고 밭 갈기나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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