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세상을 아무리 원망한들

2007-02-24 (토)
크게 작게
김명욱(목회학박사)

세상을 바꾸려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을 바꾸는 편이 훨씬 세상을 살아가기가 쉬울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악하고 더럽고 보기 싫다 해도 세상은 세상이니 어쩔 수 없이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사람으로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이다. 세상을 아무리 원망한들 세상은 세상 그대로 돌아간다.
세상을 원망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을 먼저 변화시켜 세상에 적응하여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 보다 지혜로운 생각이다. 그렇다고 세상의 모든 잘못된 힘과 부조리에 아부하고 굴복하며 살아가라는 것은 아니다. 당당하게 맞설 것은 맞서서 부조리를 파헤치며 진실을 왜곡하지 않고 떳떳이 살아감이야말로 세상을 바로 살아가는 것임엔 틀림없다.

그런데 세상은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세상의 수많은 구조적 모순점이 그대로 들어나는데도 그 모순에 이리 얽히고 저리 얽히며 살아나가야 하는 것이 태어난 자들이 감당해야 할 과제이자 풀어야할 숙제다. 그 모순 중에는 힘 있는 자들의 횡포와 권력과 돈의 힘에 기를 못 피며 억눌려 생을 살아가야 하는 자들의 가련함도 들어 있다.
자기 자신을 세상에 적응시키려 한다 함은 자신을 세상이라는 보편성에 적응시켜야 함과도 같다. 보편성과 합리성은 냉정하다. 냉정함은 객관성을 담고 있다. 귀 하나 있는 나라에서는 귀 둘 있는 사람은 병신이다. 그런데 태어날 때 귀 둘을 갖고 태어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귀 하나 달려있는 것을 보고 그들을 병신이라고 한다면 보편성과 합리성과 객관성에 어긋난다.


귀 하나 있는 세상에 귀 둘 달고 태어난 사람은 특수성에 속한다. 특수성이란 고유권한 영역이지 보편성과는 상치된다. 귀 둘 달린 사람은 귀 하나 달린 세상에 적응하려 노력해야만 한다. 그래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다. “왜 부모님께서는 귀 둘 달린 나를 이런 세상에 내 놓으셨나요”하며 아무리 부모를 원망한들 세상의 보편성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조직일 때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속해 있는 조직의 규율에 순응해야 함이 보편성이다. 그 조직에 순응하지 못하면 조직에서 퇴출되게 마련이다. 조직이 아무리 자신의 성향과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조직의 일원으로 남아 살아남으려면 조직의 정책과 방향에 맞추어 충실히 적응해 나가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조직의 정책과 방향이 자신의 생각과 이념에 대립되어 모순을 낳는다면 해야 할 일은 두 길뿐이다. 자신의 생각과 이념을 변화시켜 조직을 따르는 길이 하나다. 또 하나는 조직을 떠나는 길이다. 조직을 떠나 또 다른 조직으로의 전향은 작은 조직일 때에는 쉬울 수 있으나 적대적 국가 간이나 혹은 특수 조직일 경우 배신자가 되어 목숨까지 위태로울 수 있다.
스님이 절이 싫다고 하여 절을 떠나라고 할 수는 없다. 설령 절보고 떠나라 하여도 절은 그대로 있게 된다. 절이 싫은 스님은 스님 스스로 절을 떠나 자신에게 맞는 절로 가야 한다. 스님이 절이 싫다고 할 때에는 건물을 보고 하는 말은 아니다. 절이 운영되고 있는 절 안의 조직과 힘을 보고 하는 말이다.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길은 자신을 먼저 변화시키는 길이다. 세상에 널려 있는 쓰레기를 보며 그 쓰레기 많음을 원망하며 한탄할 게 아니다.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쓰레기와 자신 앞에 놓여 있는 쓰레기부터 먼저 치울 일이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자신 마음의 쓰레기를 치울 때 세상의 부조리 적 쓰레기는 모두 청소가 될 것이다. 한 사람의 능력이 제아무리 많다 해도 조직의 한 일원으로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에는 능력 많은 그 사람은 조직으로부터 배제될 수 있다. 능력의 차이와 한계는 사람마다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 능력이 조직과 세상을 더 좋고 나은 쪽으로 인도하는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할 때 그 능력은 그 사람과 함께 사장될 수 있다. 이때 그 사람은 자신을 변화시켜야만 살아남는다.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세상은 변해 보이지 않는다. 보편성과 합리성과 객관성을 안고 운영되며 보이지 않는 힘의 바탕으로 지탱되는 세상은 자신보다도 월등하다. 세상, 그 안에 놓여있는 신비적 색채는 한 개인이 안고 살아가는 신비보다도 더 큰 힘을 갖는다. 그것은 사람 혹은 인류란 총체적 복합성과 역사성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꾸려하기 보다는 자신을 먼저 바꾸어 세상의 바꾸어짐을 바라며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조리와 모순의 세상을 원망한들 세상은 세상 그대로 돌아갈 뿐이다. 머리는 얼음, 가슴은 불처럼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