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불황보다 더 힘든 출혈경쟁

2007-02-2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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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열(취재2부 차장)

“다른 가게에서는 10달러나 싸던데 그 가격에 주세요.” “그 가격에 팔면 밑진다니까요. 본전은 받아야 지요”지난 주 플러싱의 한 가전 판매점에서 뒤늦게 전기 히터를 싸게 사려는 고객과 점원간에 가격 흥정이 벌어졌다. 고객은 다른 업소에 파는 값보다 비싸다며 깎으려하고 점원은 그 값에는 팔 수 없다며 고개를 저으며 가격 줄다리기를 했다.

흥정은 결국 고객이 요구한 가격보다 5달러 높은 선에서 거래가 이뤄지는 식으로 결말이 났지만 고객과 점원의 표정 모두 밝지 않았다. 요즘 한인상가에서 힘들 지 않게 목격할 수 있는 모습이다.불경기가 장기화되면서 가전 판매점은 물론 식품점, 잡화점, 식당, 의류점, 여행사, 주점, 카페 등 업종을 막론하고 마진을 줄인 할인 이벤트가 줄을 잇고 있다.
어떤 업소가 먼저 값을 내리면 경쟁 업주들은 어쩔 수 없이 이에 뒤질세라 더욱 큰 폭으로 내리는 등 한인 상인들의 제살 깎기식 경쟁이 성행(?)하고 있다.


상인들은 저마다 “불경기보다 더 힘든 게 가격 출혈경쟁”이라고 토로한다.실제 한인 가전판매점들이 챙기는 이윤은 2년 전보다 10% 수준 이상 떨어졌다는 게 업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불황이 본격화되기 4~5년 전에 전기밥솥 1대를 팔 때 남는 이윤이 지금은 절반도 안 된다.이처럼 한인업소들이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강력한 가격 경쟁력을 지닌 대형 회사들에게 밀리기 때문이다.

대형 회사들이 가격을 내리면 따라 내리지 않을 수 없다.맨하탄에서 의류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대형 백화점에서 일반 소규모 상점들보다 더 좋은 제품을 싸게 파니 장사가 안 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냐”면서 “갈수록 질 좋고 싼 물건만을 찾는 소비자들을 탓할 수도 없다”며 넋두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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