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2007-02-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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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춘(페어필드 트레이딩)

옛날에 명동에서 “사장님” 하고 부르면 열에 아홉은 뒤돌아 보았다더니 요즘 한인들이 모인 한국식당에 가서 “회장님” 하고 인사하면 열명 중 다섯 사람은 뒤돌아본다는 말이 있다.‘회장’이라는 직함은 수 십개의 기업군을 거느리고 있는 총수를 지칭할 수도 있고(어떤 기업 군(群)에는 회장님이 하도 많으니 왕 회장님도 있었다) 저명한 학술단체를 이끌어가는 학회를 대표하는 자리일 수도 있고 동창회나 친목회에서 수고하는 사람을 회장으로 뽑는 수도 있다.

세계 어느 나라이고 한인이 모여 사는 도시에 들려보면 어김없이 그곳의 한인회가 있고, 그 지역 한인을 대표하는 회장님이 있어 서로 의지하며 타향살이의 어려움 속에 서로 돕고 살아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힘들고 외로운 이민사회에서 같은 언어, 같은 생활정서를 가진 동족끼리 오손도손 모여서 애환을 나누고 친목 모임을 향유하며 모이다 보면 어느덧 인원이 불어나고 대내, 대외적으로 체면을 세우려다 보니 명칭이 그 지역 한인회라 이름하여 미국 전역에도 수 백 개의 지역 한인회가 자생(自生)되어 있다.


이민사회의 지역 한인회장은 고국을 떠나 타국에 살며 민족의 동질성을 유지하고 한민족의 자부심을 북돋우며 회원에게 필요한 정보 제공과 권익 옹호에 개인적인 시간과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며 헌신하는 무보수의 명예직이자 권력과는 무관한 봉사직이다.지역 한인회장은 그래서 그 지방 어느 모임에서나 여러 사람의 존대를 받고 있다.

대뉴욕지구의 역대 회장님 가운데는 오늘처럼 튼튼한 한인회의 초석을 다져놓은 명망 높은 인사도 있었고 학식 있는 전문직의 교수분도 있었고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미 주류사회와 한인사회를 연결하는 충실한 교량 역할을 한 훌륭한 회장님도 있었다. 재임중 강철 심이 든 튼튼한 동아줄을 잘 잡아 본국의 정치판에 뛰어들어 한 때를 풍미한 정치꾼도 있었다.그러나 개중에는 함량 미달의 인사가 한인회장을 맡을 때는 꼭 말썽을 일으키는 때도 있다. 그도 인간인지라 실수나 시행착오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제 삼자가 오류나 실수를 지적하면 솔직히 시인하고 사과하고 시정하여 더 좋은 한인사회를 꾸려가는 인품을 가진 사람을 보기를 우리는 원한다.

자칭 대뉴욕한인회는 요즘 바람 잘 날이 없이 평지풍파를 일으키며 동포 언론에 이맛살을 찌푸리는 기사를 제공하고 있다. 이곳에는 수많은 지역 직능단체가 있으나 개중에는 아무 활동상이 없는 유명무실한 단체의 회장님만 존재하는 회도 있다. 아무튼 한인회는 그 중의 좌장격으로 그 지역 한인을 대표하는 자생단체이다. 동포사회 위에 군림하는 권력기관은 더 더욱 아니다.

평통회장과 달라 본국정부에서 임명하는 직책도 아니고, 어떤 통제 세력을 가진 행정기구도 아닌데 때로는 뉴저지 거주 주민이 대뉴욕한인회에 포함되느니 안 되느니 ‘관할구역’ 논쟁으로 지역 회장끼리 세력다툼이 벌어지는 희극이 벌어진 때가 있었고, 또 근래에도 어느 지역 한인회에서는 회장 선거가 잘못 되었다 하여 미국법원 명령으로 회장을 다시 뽑는 촌극을 연출하는 단막극도 있었다.자질 부족의 회장일수록 당대의 세도가(勢道家)처럼 한인들의 모임에는 빠짐없이 나타나 얼굴 내밀고 사진 찍고, 한인 TV 뉴스에 나와 생색을 내지만 막상 한인들의 권익을 대변할 주류사회의 모임에는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또 해바라기성 본국 지향파는 한국에서 유명 무명 정치인이 오는 날이면 더욱 명성을 휘날리며 눈도장 찍기에 바쁜 모습이 엿보인다.
능력있는 한인회장이라면, 목에 힘주며 우물 안 개구리처럼 한인 모임에서만 눈썹 휘날리며 휘젓고 다니기 보다는 그곳 지방정부의 실세들과 교분을 쌓고 동포들의 애로사항, 복지향상, 권익을 찾아줄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인사가 진정 그 지역 한인회장으로 존경받는 한인회
장 상(像)이다.

역대 뉴욕 한인회장님 중 이런 업적을 남긴 많은 분들은 아직도 뉴욕 동포들의 기억 속에 아름다운 정분으로 남아 있다.차기 대뉴욕지구 한인회장님은 제발 덕망 있고 인품 있는 인사가 회장을 맡아주기를 기대한다.
끝으로 한인 언론도 동포사회를 위하여 애쓰고 공헌하는 이들을 격려하고 미담을 함께 나누며 칭송하는 일에 적극 나서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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