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걱정되는 달러화의 추락

2007-02-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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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미국인이 아닌 우리가 미국에 살게되면서 누리게 되었던 한 가지 특전 아닌 특전이 있었다고 하면 미국 달러를 벌어서 쓸 수 있었던 것이었다. 크기만 하고 값어치가 없었던 한국돈이나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딱지처럼 작은 다른 나라의 돈과는 달리 크기도 적당하면서 빳빳한 미국 달러는 그야말로 힘있는 돈이었다. 돈의 가치가 안정적이었기 때문에 세계의 어디서나 환영을 받았고 모든 사람들이 축재의 수단으로도 가지고 싶어했던 돈이 미국 달러였다. 그래서 많은 나라에서는 암시장에서 미국 달러가 공정환율보다 훨씬 비싼 값으로 거래됐다.

그런데 요즘 한국을 다녀왔거나 한국에 송금을 해 본 사람이라면 달러가 얼마나 가치를 잃어버렸는지를 실감했을 것이다. 최근 달러는 940원 이하로 떨어졌다. 얼마 전 1달러가 1,000원 이상일 때만 해도 달러를 원화로 환산하면서 안도감을 가질 수 있었다. 1달러가 1,000원이면 100달러가 10만원, 1,000달러가 100만원이 넘는다고 어림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1,000원 이하가 되었으니 계산이 좀 복잡하게 되었다. 한국의 외환 위기로 1달러가 1,965원까지 올랐던 지난 1997년에서 10년간 달러의 원화 환율은 절반으로 떨어진 셈이다.


달러 환율이 떨어지니 한국에서 들어오는 수입품의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한국상품의 소비자는 비싼 가격을 내야 하고 수입업자는 수입 단가가 올랐다고 물건값을 터무니없이 올릴 수만은 없으니 비즈니스가 어려워지게 되었다. 한국상품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수입선이 다른 나라로 바뀌게 되니 한국 경제에 좋을 수는 없게 되었다. 달러가 떨어지고 원화가 올라가면 한국에서 돈을 가지고 나오는 투자가나 한국돈으로 경비를 쓰는 유학생 또는 관광객은 좋지만 미국에 사는 한인들은 이래저래 손해를 보게 될 수밖에 없다.

미국 달러는 원화 뿐만 아니라 다른 화폐에 대해서도 하락세를 계속하고 있다. 달러는 유럽의 단일통화인 유로화와 3년 전 같은 가격이었으나 현재는 1유로가 1.4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이렇게 되니 이제는 달러 대신 유로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 국제 거래에서 유로화의 비중이 크게 늘고 있다. 경제적인 이유 뿐 아니라 반미국가들이 미국을 미워해서 달러 대신 유로화를 쓰니 이래저래 달러 수난시대가 되었다. 달러는 유로화 뿐만 아니라 중국의 위안화나 영국의 파운드화에 계속 밀리고 있는 처지이다.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상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에서 발행된 채권의 액수로 볼 때 유로화로 표시된 채권이 51%, 달러화로 표시된 채권이 37%였다고 한다. 4년 전인 2002년도에는 유로화 채권이 27%, 달러화 채권이 51%였다고 하니 심각한 역전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유럽국가의 채권 발행이 증가한 데도 원인이 있지만 세계 각국이 점차로 달러 의존도를 줄이고 유로화를 선호하는 추세를 보여준 또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미국의 달러가 추락하고 있는 것은 다른 요인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미국경제에 대한 우려와 불신 때문이다. 미국의 가장 큰 문제거리인 무역적자와 재정적자가 날이 갈수록 개선될 기미는 없고 눈덩이처럼 불어나고만 있다. 미국 기업의 경쟁력은 계속 떨어지고 있는 추세이고 반면에 중국과 같은 개도국이 엄청난 속도로 미국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미국이 아무리 부유한 나라라고 하더라도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결국 어려움에 처하게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의 경제가 어려워지게 되면 미국의 돈이 가치가 없어지게 되고 달러의 가치가 떨어지면 달러로 거래되는 미국 내의 모든 재산가치가 떨어지고 만다. 즉 미국의 국부가 줄어든다는 말이다. 이것은 곧 미국에 살고있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산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같은 미국의 국부와 미국에 사는 사람들의 재산 손실은 미국의 미래에 재난을 몰고오게 될 것이다. 달러 환율이 떨어지면 수출을 자극하고 수입을 억제하여 무역적자의 폭을 어느 정도 감소시킬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무역수지를 개선하기 위해 이런 방식을 계속 쓴다면 달러는 계속 떨어져 미국의 경제는 나날이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환율로 무역수지를 개선해 보겠다는 것은 단기적 응급조치밖에 되지 않는다. 무역수지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품질과 가격에서 미국제품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고 무역제도를 개선하는 방도를 찾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 달러화는 더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데 미국 경제가 어려워져서 이에 대처하기 위해 금리까지 인하한다면 달러의 추락은 불가피해질 것이다. 그런데 이런 추락 현상을 방치할 경우 미국의 기업이나 개인들 조차 달러화 대신 외환을 보유하려고 할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환율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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