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역사 왜곡에 이어 문화의 왜곡 전달까지..?

2007-02-1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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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취재1부 차장)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을 전후로 뉴욕·뉴저지 일원의 공립학교마다 설 행사가 넘쳐나고 있다.어느 학교를 가든지 부채춤, 꼭두각시, 사물놀이, 태권도 등은 매년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 10여년 넘게 매년 같은 내용의 프로그램을 지켜보는 타민족 교직원들마저 식상해할 정도가 됐다.
이제는 새로운 한국의 전통문화를 소개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절로 생겨나는 요즘, 또 다른 걱정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바로 한국문화의 왜곡 전달이 그것이다. 그것도 남이 아닌 우리 손으로…

설 행사가 오래된 학교에서는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직접 한국의 전통예술을 가르치는 타민족 교사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춤사위나 가락, 장단이 기본 틀을 벗어나 본래의 색과 맛을 잃어 소속이 불분명해지거나 변형되는 경우마저 생겨나고 있다. 실제로 한 학교에서는 한인학부모들이 백인교사에게 ‘궁상각치우’를 가르쳤건만 정작 동양도 서양도 아닌 애매모호한 음악이 탄생해 버젓이 무대에 올려졌다.
또 다른 학교에서도 학급 제자들과 함께 관객들에게 세배를 하겠다며 무대에 오른 백인 여교사는 두 손을 합장하고 태국의 전통인사법인 ‘와이(Wai)’로 한국의 세배를 대신했다.


이날 행사는 ‘아시아 설 행사’가 아니라 ‘한국의 설 행사’라는 이름으로 열렸고, 여교사도 나름대로 한국의 사물놀이에 심취해 공연활동까지 벌여온 인물이었기에 이 장면은 과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한편으로는 그저 타민족 학생과 교직원이 한국의 것을 접했다는데 의미를 부여하고 기분 좋게 웃어넘길 수도 있는 문제다. 하지만 그런 상태로 또 다른 교사와 학생들에게 계속 전달된다면 결국 기본은 모두 잃은 채 변질되거나 왜곡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될 뿐이다. 물론, ‘전통’이라는 이유만으로 100% 그대로 물려받아 전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알맞게 변화도 거치고 개선되어야만 한 단계씩 발전을 기대할 수 있기 마련이다.

그렇더라도 이 같은 변화는 제대로 기초가 닦인 상태에서 새로운 것이 보태지며 다듬어져야 하는 것이지 기본을 무시한 채 겪는 변화는 개선과 발전 대신 변질과 왜곡을 낳게 될 위험만 떠안게 된다. 여전히 한국을 전혀 알지 못하는 미국인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나마 한국을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미국인들조차 한국과 일본, 중국의 문화를 서로 혼동하며 이해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이는 한국을 제대로 알리는데 게을렀던 우리 스스로에게 그 잘못을 물어야 할 부분이다.

한동안 한국과 미국이 ‘요코 이야기’로 비롯된 한국의 역사 왜곡 문제로 한창 들썩인 바 있다. 역사 왜곡 문제도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과제지만 행여 한국의 문화가 왜곡 전달될 위험에 대해서도 우리 모두 경각심을 갖고 미리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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