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식이 호흡을 멎게할 수 있을까

2007-02-17 (토)
크게 작게
김동욱(뉴욕 코리안닷넷 대표)

수일 전, 내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의 목사님과 함께 롱아일랜드에 있는 한 병원을 방문했다. 산소호흡기에 의지하여 겨우 연명을 하고 있는 분의 병실을 찾았었다. 가족들에게 “앞으로 4~5일 정도밖에 사실 수 없으니 임종을 준비하라”는 통고가 의료진들로부터 전달된 후였다.우리가 병실에 도착했을 때 환자분의 자녀들은 모두 자리를 비우고 계셨다. “플러싱에 있는 장의사에 갔다”고 환자의 외손녀되는 아가씨가 말해 주었다.

환자와 가족들을 위하여 기도를 드린 후에, 환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핏기라고는 전혀 없는 하얀 얼굴,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거친 호흡소리, 그 때마다 고통에 못이겨 일그러지는 표정, 말소리가 들릴 때마다 순간적으로 움찔하는 몸 동작, 우리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는지, 아니면 그냥 소리가 나니까 반사적으로 반응을 하는 것인지..


산소호흡기를 이용하여 숨을 쉴 수 있는 날도 4~5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단다. 이미 모든 의료행위가 중단되어 있단다. 물론 산소호흡기를 제거하면 바로 숨을 거두게 될 것이다. 한번씩 숨을 쉴 때마다 힘에 겨워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30분 정도를 병실에서 머물다가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가 환자도 되어보고 자녀도 되어 보았다. 내가 환자일 경우에는 쉽게 결론을 낼 수 있었다. “얘들아! 어차피 내가 살 수 있는 날이 4~5일에 불과한데 지금 숨을 쉬는 것 자체가 엄청 고통스럽다. 그러나 내가 편안해지도록 이 산소 호흡기를 제거해 주었으면 좋겠다. 지금 그래주기 바란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
만 내가 가족이 되어 생각하니 그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아무리 의료진들이 4~5일밖에 연명할 수 없다고 통고했다 하더라도 자식된 도리로 산소호흡기를 제거해 달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산소호흡기를 떼어내는 순간에 숨을 거둘텐데 자식으로서 어떻게 산소호흡기를 제거해 달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못할 것 같았다. 환자가 아무리 고통스러워 해도 그 말은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사람들은 내가 당사자가 아닌 일에는 너무 쉽게 판단도 하고 결론도 내리고, 그것이 마치 진리인 것처럼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인 경우에는 판단 자체를 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하고, 아무리 궁리를 해도 어떠한 결론도 이끌어내지 못하는 경우들
이 허다하다.내 아버님이나 어머님이 내가 그 날 병원에서 보았던 환자분과 같은 상황에 있게 된다면, 설사 내 아버님이나 어머님이 건강하실 때에 그에 대한 특별한 당부가 있었다 할지라도 나는 그 당부는 따르지 못할 것 같다. 고통의 기간이 4~5일이 아니라 더 길어진다고 해도, 나는 그 당부는 받들지 못할 것 같다. 지금의 생각이 그렇다는 얘기다.당하시는 고통이 너무 너무 힘들어 보이면 그 때는 지금의 내 마음이 바뀔런지 모르겠으나 어떤 쪽으로 행동을 하건 여전히 후회는 남아있을 것 같다.

아버님, 어머님!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사십시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