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언어의 향기

2007-02-2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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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성(뉴저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즉 말하기와 쓰기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쓰고 있고 실제 달리 표현하게 마련이다. 때와 장소에 따라 교양있고 품위있는 말을 사용하기도 하고, 격조있고 교양에 찬 글을 구사할 수도 있는데 역시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음으로 자라온 가정과 사회의 풍토, 그리
고 개개인이 받은 교육 수준과 사상, 신념에 따라 달라지는 게 사실이다.
낮은 목소리로 고분고분 우아하게 말을 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보면 딱히 내가 독심술의 대가가 아니더라도 이 사람이 지금 얼마나 진실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걸 대충 알 수도 있다고 하면 너무 오만한 표현일까 염려가 되지만, 사실 말이나 글을 쓰는 사람들의 식견
과 경륜, 그리고 인격에 따라 말과 글에 향기가 풍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을 하기만 하면 추태를 보이는 이들을 우리는 현실에서 보게 된다.

글도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사람의 맑고 아름다운 마음과 삶의 자세를 갖고 사는 이의 생활철학이 베어있는 글은 우선 처음부터 말미까지 마치 싱싱한 향과(香果)를 음미하는 기분이다. 그래서 좋은 글을 쓰고 품위 있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우선 그런 향기를 낼 수 있는 삶을 사
는 일부터 선행되어야 되지 않을까 싶다.중국 격언에 ‘장미꽃을 전하는 손길에는 늘 장미 향(香)이 넘친다’라는 마음에 와 닿는 글이
있다. 말과 글도 마찬가지여서 좋은 글을 쓰고 말을 하는 분들을 보면 그런 분들의 인품에서 전해지는 향기야말로 늘 우리 주위를 맑고 청량하게 해 줄 뿐 아니라 세상이 온통 밝아지고 행복해지는 기쁨을 누리게 만든다.
하지만 마음을 다스리지 않는 경박한 자의 입에서는 악취만 풍기고 머리가 텅 빈 수레에서는 잡음만 요란할 뿐, 이런 사람들이 정치를 하면 나라 장래가 암담해지고 이런 부류들이 설치는 곳에서는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분열과 분쟁만 있게 마련이다.


어느 시인이 “말은 칼에 비유하지 않고 화살에 비유한다. 한번 나가면 어딘가에 박혀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가슴에 치유가 안되는 상처를 주고 마음을 다친다. 좋고 풍성한 고운 말로 사랑의 새 경전을 쓰라”고 했는데 추가해 이르기를 어느 노부인이 자
신의 임종을 지켜주기 위해 온 신부의 다리가 아플까 걱정이 되어 ‘의~ 자~”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고 전한다.
이렇듯이, 말이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덕담이 될 수도 있고 악담도 되는데 실언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들을 보면 평소 자기 수련이 전혀 안돼 있는 게 문제인 것이다. 더욱 가소로운 것은 거짓말을 떡 먹듯이 하고 남을 비방하는 소리를 거침없이 하면서도 사람들 앞에서는 품위
를 찾고 고고한 척하는 역겨운 모습을 보이는 자신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흔히 글재주가 있다는 사람들이 필력이 있어 글은 잘 쓰는 듯하지만 그의 사상이 불온하거나 인격상에 흠이 있는 분들은 글에 가시와 감정이 드러나는 과(過)를 범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폐해를 끼친다는 거다. 말을 함에 있어서도 파장은 마찬가지가 아닐까!차제에, 우리 모두 명랑하고 밝은 한인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고운 말과 좋은 글 쓰기 캠페
인을 전개하는 삶을 펼치는데 앞장서야 되지 않을까 한다.고요한 아침의 해뜨는 나라, 동방예의지국의 후예로서 말이다.타고르의 ‘동방의 등불’을 소개한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빛나던 등불의 하나였던 코리아/그 등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마음에는 두려움이 없고/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지식은 자유스럽고/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을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굳어진 습관의 모래벌판에 길 잃지 않는 곳/무한히 퍼져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그러한 자유의 천국으로/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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