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랑이여, 영원하라!

2007-02-1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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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현(칼럼니스트/뉴욕교협)

‘사랑이여, 영원하라’ 무슨 영화 제목같은 얘기다. 사랑에 빠진 청춘들에게는 지당한 말이지만 중년이 넘은 사람들은 ‘과연 그런가?’하고 반문해 볼 일이다.남녀간의 애정이란 무엇인가? 정신적인 것이 우선하는가? 육체적인 것인가? 아니면 물질적인 것인가? 문학가들이, 예술가들이, 수다쟁이들이 사랑에 대해서 말한다.

과학자들도 사랑에 대한 분석을 시도했다. 인류학자 헬렌 피서는 연구팀을 구성해서 여러 해 동안 병원에서 쓰는 MRI(자기공명 영상장치)로 단층촬영을 해서 사랑을 찍어냈다. 사랑에 빠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현격한 차이는 뇌세포 속에 도파민이라는 화학물질의 증감의 차이라는 흥미로운 결과로 나타났다.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도파민이 현저하게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이 연구팀은 세로토닌이라는 화학물질의 수치가 사랑에 빠지면 40% 이상 감소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그런에 이 세로토닌 감소 비율은 강박증에 걸린 사람의 수치와 같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러므로 사랑은 일종의 강박증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렇다. 그러므로 하루 종일 사랑하는 사람만을 생각하게 되고, 치열한 사랑을 해도 피곤한 줄 모르는 것이다.심리학자들은 외디프스 컴플렉스니, 집단무의식이니 어려운 말을 써가면서 사랑을 분석한다. 캘리포니아주립대 의과대학의 토머스 루이스는 영아기의 어머니 가슴에 대한 포근함에 대한 무의식이 성인이 되어서 이성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이스 신화에서는 큐피트의 화살에 그 이유를 대고 있다. 어느 이성을 만나는 순간 사랑의 신 큐피트(에로스)가 화살을 쏘는 순간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냉정하지만 사랑이란 다름아닌 죽음을 준비하는 단계라는 철학적 정의도 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죽기 전에 2세를 남기므로 영속적으로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란 과연 분석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인간의 정황’으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문학과 음악은 사랑에 대한 예찬이나 슬픔에서 비롯된다. 로맨티즘은 사람들에게 가장 큰 동기를 부여한다. 사랑을 얻기 위해서 모험을 하고, 성공하려고 몸부림치기도 한다. 그리고 사랑을 통해서 가족이 형성되어 자녀를 양육하고 인류를 계승하게 되는 것이다.
젊은 시절 부르던 노래에 ‘봉가왕 솔로’라는 필리핀 가곡이 있다. 어버이들도 사랑을 했고, 우리도 사랑을 하고, 아이들도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가사로 기억된다.그렇다. 사랑이여, 영원하라!

그런데 입맛이 변하듯 사랑도 변하는 것인가? 사랑하는 패턴도 유행이 있는가? 요즈음 세대는 과연 ‘영원한 사랑’에 대해서 ‘과연 그런가?’하고 다시 생각하게 한다. 영원히 사랑이란 하나님의 사랑 외에 인간에게 적용되는 말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통계를 따질 것 없이 까딱하면 이혼하고, 재혼하는 일이 늘어난 것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이혼하지 않고 잘 사는 부부라도 대부분 배우자를 연애할 때처럼 열렬하게 사랑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예의 연구팀은 생리학적인 관점에서, 도파민으로 가득찬 낭만적 사랑을 하다가 옥시토닌이라는 화학물질이 증가하면서 그 영향으로 다소 차분한 사랑으로 이동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옥시토닌은 유대감을 높이는 호르몬으로, 중년부부나 자녀가 포옹할 때, 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먹일 때 분비된다. 들쥐처럼 옥시토닌이 많이 분비되는 동물은 처음 만난 짝과 평생 함께 한다고 한다. ‘사랑보다 정’으로 산다는 말은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도파민이 활발하게 생성되는 기간은 결혼 후 4년 정도라고 한다. 그러므로 처음 사랑이 식어서 ‘모든 것이 전같지 않다”고 싸우고 헤어질 일이 아니다. 항상 사랑에 취해 있다면 언제 일하고, 어떻게 자녀를 키우며, 언제 연구하고 집을 수리하겠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오늘은 ‘발렌타인 데이’다. 남자나 여자나 무론하고 과거지향적 사랑이 아니라 현재지향적
사랑을 표현하는 날이 되길 바란다. ‘사랑은 이론이 아니고 분석의 대상도 아니다. 다만 표현하는 것이다’요즘은 양성 동등주의의 영향으로 사랑의 표현 방식도 변했다고 한다. 남성이 일방적으로 사랑을 고백하던 시절은 지나갔고, 여성도 언제든지 사랑을 능동적으로 표현하는 시대가 됐다. 우리는 21세기를 살고 있지 않는가?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더 부끄러운 일이다. 사랑은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발렌타인 데이는 중년들도 바쁜 일상 속에서 잃어버렸던 로맨스를 느끼는 날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표현하자. 선물을 준비하자. ‘사랑이여, 부디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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