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6자회담의 ‘숨은그림’

2007-02-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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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지난 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최악의 위기로 치닫던 북핵 사태가 새해들어 해빙 무드를 보이더니 드디어 6자회담이 재개됐다. 미국과 북한의 태도가 많이 누그러진 가운데 시작된 이번 6자회담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가장 성과있는 회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에는 북한이 6자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대북 금융제재의 철회를 내세웠고 미국은 북한의 핵 포기를 내세웠다.

그런데 이번 회담에서는 쌍방이 그런 전제조건을 고집하지 않고 회담 과정에서 그런 조건이 합의될 것이라는 전제 아래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이처럼 6자회담이 순풍을 맞이하게 되었는가. 그 이유는 6자회담의 주도국가인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모두 6자회담의 성공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6자회담을 주도하고 있는 중국은 이 회담이 부진하여 지역내 위기를 해소하지 못하면 핵 도미노 현상 등 화근을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자기네 영향 아래 있는 북한이라는 작은 나라마저 어쩌지 못해서 6자회담이 완전히 깨져 버린다면 신흥 강대국으로서의 국제적 위상에 큰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편 미국은 이라크전쟁 때문에 쩔쩔매고 있는 상황에서 이란이 핵무장을 서두르고 있기 때문에 북핵문제 하나라도 우선 해결해야만 하는 입장이다. 핵개발로 말하자면 미국으로서는 이란에서 시작되는 중동의 핵무장이 북핵보다 더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손쉬운 북핵부터 불을 꺼야 이란의 핵개발에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의외로 과거보다는 부드럽게 나오고 있는데는 이러한 사정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핵문제의 해결을 가장 바라고 있는 나라는 한국과 북한이다. 금년의 한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으면 한국에서 친북세력의 입지가 매우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노무현 정부나 북한이 원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남북한은 남북간 평화무드 조성을 위해 모든 노력을 할 것인데 6자회담의 성공이 그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이미 금년을 남북한 평화정착의 해로 정하고 이 작업을 시작했다. 북한은 이 6자회담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중유 제공, 경수로 건설 등 실리를 챙기려고 하고 있다. 과거 제네바 합의 때보다 더 강력해진 북한의 핵위협을 무기로 미국으로부터 더 큰 보상을 받아내려고 할 것이다.

벌써부터 북미간의 평화협정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북한은 6자회담의 성과를 통해 북미수교를 추구할 것이며 또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남북한은 더 이상 교전상태에 있는 적대국이 아니므로 남북정상회담의 재개 문제가 더욱 쉽게 풀리게 될 것이다.
6자회담의 성공, 북미수교, 평화협정 체결, 남북정상회담 개최 등 어느 단계라도 이루어질 때는 한반도에 평화가 이루어지고 곧 평화통일이 올 것이라는 환상에 모든 한국사람들이 들뜨게 될 것이다. 대통령 선거에 임박해서 이런 사태가 발생한다면 쏠림현상이 심한 한국인들의 성정으로 볼 때 선거판은 이성 잃은 광풍 속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경제나 국민생활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남북 화해 무드를 탄 친북세력에게 주도권이 넘어가게 될 것이다.

이런 사태를 남북한이 얼마나 고대하겠는가. 이렇게만 된다면 노무현 정권은 5년간 아무런 업적도 없다가 큰 일을 하게 되는 것이며 꿈에도 바라지 못했던 정권 재창출의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북한은 남한에 친북정권의 재창출을 돕게 되고 또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고 평화협정까지 달성한다면 주한미군을 몰아내고 적화통일을 할 수 있는 기초를 닦을 수 있을 것이다. 6자회담에서 북한은 실리까지 챙기게 될 것이므로 참으로 꿩 먹고 알 먹는 회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6자회담 과정에서 북미간에 핵폐기 수준과 보상 수준을 둘러싸고 의견이 상충될 수 있기 때문에 회담 일정에 파란이 일 수도 있다. 그러나 회담 당사국들이 회담의 성공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이 이번 회담의 특징이다. 그러고 보면 북한이 지난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은 올해 자신의 협상력을 높이고 합의사항에 대한 충격도를 크게 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번 6자회담이 이처럼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 첫 걸음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현 단계에서 각국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결과일 뿐이다. 근본적으로 북한이 핵개발 의사를 포기했기 때문인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북한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후 다시 핵개발을 추진한다면 이것은 지난 1994년 제네바 합의보다도 더 큰 실패작이 되고 말 것이다. 이제부터 6자회담과 남북 평화무드에서 바로 이 점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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