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합리적 사고가 요구되는 한인회

2007-02-0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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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옥(전 고교 역사 교사)

소련 군용기에 의한 야만적 KAL기 격추사건으로 브루클린 연방법원에서 재판이 있던 날 아침, 격노한 20여명의 한인들이 리더 없이 반소 구호를 외치는 데모대원 속에 필자도 서 있었다. 데모 현장에는 각 신문사와 TV방송사에서 나온 기자들 숫자가 또한 그만했다. 11시가 가까워질 쯤 당시 한인회장 K씨가 숨가쁜 모습으로 잠시 나타나더니 오후에 속개된 법정에서는 아예 보이질 않았다.

본국에서의 대선 때 대통령 후보였던 L씨가 강연차 이곳 뉴욕에 들렸을 때 그를 위한 환영행사에서 맨 앞줄에 앉은 그를 다시 한번 볼 수 있었다.
역대 한인회장 선거중 가장 격렬했던 선거를 들라면 학자 출신 K씨와 사업으로 성공한 B씨와의 대결을 기억하게 되는데 필자는 B씨나 그의 러닝메이트인 J씨와 친분관계가 있어 약간의 힘을 보탰으나 그의 낙선으로 기쁨을 맛보기는 커녕 선거비 분담 문제로 서로 싸우는 과정을 지켜보며 불쾌감만 잔뜩 경험해야 했다.


당시 한인회장이 되려는 목적이 한인들의 권익신장 보다는 유신이나 문민 등을 내세우는 불안정한 서울 정치무대 진출에 더 관심을 갖던 시절의 몇 사람의 얘기다. 그러나 한 세대 거슬러 올라가 K씨나 J씨, 그리고 지금은 서울에서 부자유스런 몸이 된 P씨 등으로 대표되는 60년대의 한인회는 친목 성격을 띤 고전적이며 낭만적인 것으로 기억된다.

작금의 한인회 간부들이 벌리는 특정신문 불매운동 운운은 또 다른 차원으로 한인회가 비대해지는 데서 오는 이권과 개인적 욕망에서 비롯된 것으로 사려된다. 한인회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할 일이 많아지면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한 노력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뜻대로 안된다 해서 특정 신문사를 비방하고 불매운동까지 벌리는 행위는 자신의 행정능력의 한계를 드러내고 신문의 기능을 이해 못하는 소아병적 행동이다.
한인회가 규탄하는 그 신문의 역사는 한인회 역사와 거의 같이 한다. 또 그 신문이 뉴욕한인들이 읽는 최대의 신문이란 사실은 한인회 간부들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상반되는 이해관계로 한인회에 의해 일어나는 불화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신문사를 홍보 활용함으로써 한인회와는 파트너로서의 의존관계를 유지하려는 진지한 노력이 불매운동 같은 이성을 잃은 행동에 앞서야 되는 것이 아닐까.우리 한인들은 본국에서 체험해 보지 못한 절대적 민주국가 미국에 살면서 타협과 절충을 경험한다. 우리를 대표하는 조직기관으로 한인회를 갖고 있다. 이런 한인회는 좀더 합리적 방법으로 문제 해결에 접근하는 지혜를 보여야 한다.

사람이 있는 곳에 분쟁이 있고 분쟁이 있는 곳에서 현명한 타협과 절충이 요구된다. 한인회가 이에 두려움을 가질 때 더 많은 사람들은 ‘신문 없는 한인회’를 택하기 보다는 ‘한인회 없는 신문’을 택할 것임은 미리 예견되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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