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2007-02-0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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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뉴욕 코리안 닷 넷 대표)

요즈음 ‘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 날’이라는 제목의 책을 읽고 있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문인 황금찬, 도종환 외 99인의 가상 유언장’을 엮어 펴낸 책이다. 작년 여름에 나온 이 책을 우연히 구입하게 되어 흥미롭게 읽고 있다. 회한이 듬뿍 담겨있는 유언장도 있었고, 감사로 충만한 유언장도 있었고, 당부로 충만한 유언장도 있었다.돈과는 거리가 먼 문인들의 유언장이어서인지 궁핍한 살림을 꾸려가느라 애쓴 아내에게 감사해
하는 내용의 글들이 많았다. 많은 문인들 중에서 선택된 101명의 문인들이 쓴 유언장이어서인지, 작건 크건 문학적으로 이루어놓은 것들에 대하여는 상당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음을 글의 이곳 저곳에서 느낄 수가 있었다.
한 편 한 편의 가상 유언장들을 읽어 내려가면서 ‘내가 만약 지금 유언장을 쓴다면 어떤 내용의 것이 될까?’를 생각해 보았다.

첫째, 여러가지 일을 했던 것들에 대하여 후회하는 마음을 담을 것 같다. 학창시절부터 이런 저런 다양한 일들을 했었다. 어느 한가지 일에만 매진했더라면, 지금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른 삶을 살고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둘째, 좀 더 나를 사랑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후회하는 마음을 담을 것 같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난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했다. 가족들보다 이웃을 먼저 생각했다. 주위의 사람들로부터는 칭찬을 받기도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하여서도 나와 같이 살고 있는 가족들을 위하여서도 결코 바람직한 생활태도는 아니었다.

셋째, 마음껏 사랑하지 못한 후회를 담을 것 같다. 난 사랑을 마음속으로만 간직하며 살아왔다.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사랑을 행동으로 옮기질 못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신체적인 장애가 사랑을 표현하는 것을 망설이게 했었다. 신문의 가십난을 장식할 정도의 열정적인 사랑을 해보고
싶었는데...

넷째,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많이 만들었던 것에 대해 후회를 담을 것 같다. 나는 내 생각을 감추어두질 못한다. 어떤 사안에 대하여 좋고 싫고가 분명한데다가,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지나칠 정도로 직설적이다. 그러다보니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은 나를 무진장 좋아하지만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마치 나를 원수처럼 대하기도 한다.여기까지 써내려오다가 ‘내가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어떤 삶을 살게 될까?’하는 물음이 떠올랐다. 아마도, 아니 틀림없이 지금껏 걸어왔던 길을 그대로 걸어갈 것 같았다.

지금껏 살아왔던 삶의 모습 그대로 살아갈 것 같았다. 내가 걸어온 길에, 내가 살아온 삶에, 헛점도 많고 잘못도 많고 아쉬움도 많고 후회스러운 것도 많지만 한가지 분명히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삶의 여정에서 부딪쳤던 모든 일들에, 내가 최선이라고 믿었던 대로 행동해 왔다는 것이다.조금은 나이가 들고 세상물정도 알게된 지금의 판단기준으로 보면 결코 최선이 될 수 없는 것들이, 당시의 내 판단능력으로는 최선이었다. 후회라고 하는 것은 결국 ‘최선이 아닌 것을 최선이라고 믿은 것에 대한 댓가’인 셈인데 최선이 아닌 것을 최선이라고 믿었던 때가 제법 많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내 삶의 여정이 얼마나 남아있을까? 죽었다는 소문도 났었고, 욕도 제법 많이 얻어 먹었으니 속설대로라면 앞으로 30년은 더 살 수 있으려나? 내가 앞으로 살아갈 날의 길이가 얼마가 됐건 헛점도, 잘못도, 아쉬움도, 후회도 지금껏 내가 살아온 삶에 견주어 조금은 그 크기가 작아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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