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돼지해가 밝아온다

2006-12-30 (토)
크게 작게

김명욱(목회학박사)

정해년(丁亥年) 돼지해가 밝아온다. 빨간색 돼지 저금통 하나를 사다 텔레비전 위에 놓았다. 그리고는 5달러 지폐 한 장을 그 속에 집어넣었다. 새로이 맞이하는 돼지해에는 모든 일들이 다 잘되기를 바라며 한 푼이라도 더 저축하는 습관을 기르기 위해서이다. 돼지의 웃는 모습이 꽤
나 애교스럽다. 새해에는 하늘이 큰 복을 모두에게 가져다 줄 것만 같다.
지나간 날들은 기억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오는 날들은 기억 속에 아직은 없다. 지난날과 오는 날의 차이점은 망각과 새로운 기대감에 있다. 좋은 추억들은 더 많이 기억하되 가끔씩 떠올리는 것은 좋다. 망각 속에서 끄집어내어야 한다. 그러나 힘들었던 추억들은 빨리 잊어버리고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이 좋다. 망각 속에 영원히 잠재워야 한다.

바로 1년 전 2005년도의 마지막을 보내며 또 새롭게 시작되는 2006년도의 새해를 맞기 하루 전 쓴 칼럼이 있다. 제목은 “새 해는 없다”였다. 그 때 쓴 글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하루만 지나면 2006년 1월1일이 된다. 사람들은 이 날을 새 해 첫날이라고 반가워한다. 12월31일이나 1월1일이나 떠오르는 태양은 같다. 부는 바람도 같다. 지는 해도 같다. 그런데 사람들은 흥분한다. 새해, 새날이 되었다고 흥분한다. 금방 신기한 일이라도 일어날 듯이 흥분해 한다. 시간과 공간은 그대로 있다. 무(無)와 같다. 새로운 것은 없다. 없는 것과 같은 시간을 인간이 쪼개놓고 인간에게 맞추어 묵은해다 새해다 하는 것이다. 어찌하랴, 새해가 되어도 사람이 바뀌
지 않으면 바꾸어지는 것은 없으려니. 사람이 바뀌어야 새 해가 된다. 새 해란 새 사람만이 맞이할 수 있는 관념의 시간일 뿐이다.”
지난 1년 동안 얼마나 사람이 바뀌었을까. 어떻게 새 사람으로 살았을까. 하는 일 마다 새롭게 하였을까. 만나는 사람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만났을까. 희망과 소망으로 한 해를 살았을까. 아니면 좌절과 낙망과 슬픔과 고통 속에서 세상을 원망하며 살았을까. 자신은 얼마나 새 사람이 되어 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더불어 살았을까.


자신이 바뀌지 않고 세상도 바뀌지 않은 지난 1년을 살았다면 새 해를 맞았다고 시작된 시간의 놀이에 그냥 춤추며 쫓아간 허수아비의 삶을 산 격 밖에는 안 될 것이다. 어찌 보면 허송세월(虛送歲月)을 낚은 것이나 같다. 세월을 낚긴 낚았어도 남은 게 없고 가치 있는 것이 없는 그냥 시간만 죽인 한 해 일수도 있기에 그렇다.
새 해는 새 사람만이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람이 시간과 공간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과 같다. 시간과 공간에 얽매인 삶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며 사는 사람만이 새 해를 맞이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없는 무(無)와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창조를 이끌어내며 새로운 삶
을 살아갈 수 있는 변화의 사람이야말로 새 해를 논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지난 한 해 동안 무수한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무수한 만남도 있었을 것이다. 희로애락(喜怒愛樂)과 생로병사(生老病死)가 함께 한, 즉 기쁨과 슬픔과 사랑과 즐거움이 함께한 한 해였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늙어가고 병들고 죽어간 한해였을 것이다. 또한 사람에 따라 아주 소중한 한 해였을 것이다. 그냥 밥 먹고 화장실가고 자고 시간만 보낸 한 해가 아니었을 것이다. 사랑과 창조가 함께 하고 시간이 멈추어 주었으면 할 정도로 살아오면서 가장 귀중하고 소중한 한 해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새 해가 시작된다. 새로운 태양이 아닌 어제 떠 오른 태양이 다시 떠오른다. 이 “다시 떠오른다”함에 의미가 있다. “다시 떠오름”은 “다시 시작되는 것임”이다. 매일 똑 같은 태양이 떠오르는 것 같다. 하지만 태양은 질적인 면에서 같다하더라도 다시 떠올라 세상을 다시 비추어준다 함에 큰 변화의 의미가 있으며 그 안에는 희망이 있고 소망이 있는 것이다. 희망과 소망과 미래가 있는 새 해라면 어제의 태양과 내일의 태양이 똑 같은 태양이라고 해도 상관할 필요가 없다.

새 해에는 더불어 사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닌, 하나가 될 수 있는 삶을 살아 갈수만 있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삶은 없을 것 같다. 기쁨과 즐거움은 함께 하면 배가 된다. 슬픔과 고통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 이웃의 슬픔과 고통을 흘려보내지 않은 동포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정해년(丁亥年) 돼지해가 밝아온다. 모두가 지난 1년의 삶의 곡절을 훌훌 벗어버리고 새로운 해를 맞이함에 큰 소망과 나눔의 한해, 즉 더불어 사는 희망찬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