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의 인생 결산서

2006-12-3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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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성(뉴저지)

이제 한 해를 마감하게 된다. 매년 이맘 때쯤 되면 지난 일년을 정리해 보면서 마음의 결산도 하게 되고, 또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새로운 계획과 결심을 하게 된다. 이것이 일상처럼 느껴지는 것은 때가 되면 예외없이 찾아오는 세모와 세월이 채바퀴 돌듯 부단히 흘러가 버리는 인간들만의 시간 관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쩌다 보니 어느덧 세월은 흘러서 두어달 후면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나는 내 인생의 어느 지점 쯤 와 있으며, 지금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처음으로 자문해 보는 마무리 인생의 길목에 접어들고 있음에 비애를 느낀다.이렇게 나와 세계는 허탈하게 끝나는 것일까?
지금까지 내 인생의 여정에서, 나는 잃어버린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흘러간 세월, 죽어서 내 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들과 생사조차 모르고 연락이 두절된 절친했던 친구, 이젠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지난 추억들, 그리고 그 모든 상실의 아픔들… 이런 생각을 하면 나는 한없이 쏟아져 밀려드는 서글픔을 참을 수가 없다.


그동안 우리 세대는 항상 언제 어디서나 나름대로의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며 혼신의 노력을 경주한 삶을 살아왔고 또 그 정상을 향해 달려왔던 것도 사실이다.그런데 과연 나는 그동안 무엇을, 어떻게 제대로 이루어 놓은 일이 있는가 자문해 보지만 사실상 무엇 하나도 뚜렷하게 해놓은 게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결코 우리가 될대로 되라 하는 식의 삶을 영위한 건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오늘은 나는 과연 무얼 갖고 있으며,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 중에 무엇이 가장 좋은 것이고 또 자랑스러운 것은 무엇인가 하는 걸 생각해 보았다. 슬픈 사실은 내가 갖고 있다고 하는 것 중에 확실히 내놓을 만한 거라고는 이렇다 할만한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굳이 따진다면 잘나빠진 ‘아집’과 ‘교만’과 ‘이기심’만 긴세월을 통해서 몸에 배이고 달랑 껍데기만 남아있는 흉칙한 몰골이 아닌가.

모든 죄의 근원이 되는 자만심과 오만심으로 온통 가득 찬 모습이다. 부끄럽기 그지없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말로만 기도하고 바지 저고리만 교회를 넘나든 위선자가 아닌가!나는 과연 속물처럼 ‘손익 계산표’에 맞춰서 이 알량한 세상을 살았던 건 아닌지? 나이가 들
면 들수록 인간의 추한 양면성을 보는 것 같아 슬픔에 젖는다. 속물들의 세계에서 나도 예외없이 속물처럼 살아 왔으니까. 그리고 입으로만 정의를 외치고 진리를 탐구하는 척 했고,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간에 남의 가슴을 아프게 한 일은 얼마나 많았는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엄청난 죄를 범하고도 지금껏 태연하게 지내오지 않았는가!

이제 내 인생의 손익계산표를 점검할 때가 온 것 같다. 계산 방법을 모르면 계리사를 찾아가 조아리고 하회를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검증된 ‘인생 손익계산서’를 들고 가면 과연 용서를 받을 수가 있을까?
아! 나는 지금 어디 있는걸까? 내가 서있는 곳이 과연 어디란 말인가! 내 눈에 비치는 것이란 온통 어디랄 것도 없이 남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정신없이 걸음을 재촉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 뿐인데, 어찌 내가 어디에 있는 걸 알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과연 길을 잃은 미아(迷兒)처럼 어딘지도 모르는, 아무데도 아닌 곳에서 누구를 부르며 찾고 있는건 아닐까?한 해의 인생 손익계산서를 들고 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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