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천국 갈 기분이 아니다

2007-01-0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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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권(동부제일교회 목사)

우리 집 앞에만 장식이 없다. 온 동네 집들이 여러 모양의 장식을 온갖 색색으로 휘황찬란하게 도배를 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만약 가장 아름답고 훌륭하게 꾸민 장식만 보시고 오신다면 우리 집은 뛰어넘으실 것이 분명해 보인다. 아마도 술집을 제일 먼저 찾아가실런지 모른다. 온 동
네 사람들이 내가 목사라는 것을 다 잘 알고 있는데, 목사 집 앞에 크리스마스 장식 하나 없고 집 안에도 크리스마스의 흔적이란 찾아볼 수도 없으니 과연 이래도 되는걸까 하고 내 자신 의구심을 가져보기도 한다.

옛날 내가 멕시코에서 잠시 목회할 때 우리 교회 집사이던 분이 과테말라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그 집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사님, 과테말라 한 번 안 오시겠습니까? 멕시코는 과테말라에 비하면 대국이고 부자 나라입니다. 여기는 굶주리는 백성이 너무도 많습니다” 멕시코는 빈부 차이가 극심했었다. 부자들은 굉장한 영화를 누리며 살았지만, 대부분의 국민은 먹고 사는 것이 어려웠다. 움막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래도 나았다. 토굴 앞에 가마떼기를 가리어 놓고 토굴에서 사는 사람들도 많았다.


‘참 못 사는구나’ 하는 마음이 절로 들지 않을 수 없었다.멕시코에서 돌아온 후 모스크바에서 신학 강의를 한달 동안 한 일이 있었다. 한인 선교사가 러시아 사람들을 대상으로 목회하는 교회에서 주일을 지냈다. 키가 크고 하얀 사람들이었다. 잘 생긴 남자들이었고 아름다운 여자들이었다. 그 선교사 내외분, 그 선교사를 돕는 고려인들, 그리고 나는 그들 러시아인들에 비하면 키도 작고 노랗고 참 못생겼다 싶었다.

점심 때 돼지고기 말린 것을 비게는 벗겨 쓰레기통에 버리고 살코기만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나누어 주었다. 오후 예배를 마치고 돌아갈 때 청소하면서 그 선교사가 쓰레기통을 내게 보여주었다. 쓰레기통에 버렸던 비게들이 온 데 간 데가 없었다. 오후 예배드리는 사이에 쓰레기통을 뒤져 모두 가져간다는 것이었다.모두가 허기지고 가난에 찌들어 있는 모습이 역력하였다. 멕시코에 사는 사람들은 러시아 사람들에 비하면 그래도 행복한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과테말라는 러시아 사람들 보다 더 못하는 사람들일까? 과테말라 사람들보다도 더 못 살고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들이 지구상에는 또 얼마나 될까?

가난하고 힘든 교회에는 사람들이 오지를 않는다. 소위 말하는 대형교회에는 사람들이 물밀듯이(?) 밀려온다고 한다. 건물이 크고 화려한 것이나 사람들의 숫자를 보고 예수님이 오신다거나 예배를 받으신다면 개척교회나 교인 수가 적은 교회는 예수님께로부터도 외면당할 것이 틀림없다.
예수님은 과연 어떤 교회에 더 애착을 많이 가질까? 예수님이 오늘날 세상에 계신다면 어떤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릴까? 수백명의 찬양대와 오케스트라가 있는 교회를 선호할까?

어렵고 힘든 교회는 성도들이 하나 둘 떠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이니라”고 아무리 큰소리로 외쳐 설교해도 가난한 교회에서는 천국 갈 기분이 아니란다. 천국은 어렵고 힘든 곳이 아니니 그 말도 맞는 듯하다. 기분 나쁘게 하면 천국 안 가도 좋다고 할 만큼 살기 좋은 미국이나 한국인데 하필이면 왜 사서 고생하며 교회생활을 해야 하겠는가!4장으로 되어있는 짧은 빌립보서에 로마의 감옥에 갇혀 죄수생활을 하고 있었던 사도 바울은 “기뻐하라”는 말을 직접 혹은 간접으로 16번이나 하고 있다. 그는 감옥생활을 하면서도 천국의 기쁨을 누리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심으로 구원함을 받은 기쁨과 장차 저 천국에 가서 누리게 될 행복을 소망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감옥으로 찾아오는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성탄절을 날마다 맞이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가장 가난했던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천국을 소망하며, 부활 때 낮고 천한 우리의 몸이 영광의 몸으로 변화될 것을 바라며 땅 위에서 천국의 기쁨을 누리는 삶을 가지도록 권면했던 것이다.(빌3:20-21)지난 성탄절 즈음 각 선교단체, 구호단체들로부터 도와달라는 편지들을 수십통씩 받았다. 한결같이 어렵고 힘들고 가난한 사람들과 어린이들에 대한 구호의 긴급성, 혹은 선교의 긴요성을 역설하는 내용들이다. 그 간절한 편지마다 실망시키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나눠주려면 집 앞이나 집 안의 크리스마스 장식은 단념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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