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노인의 노욕(老慾)

2006-12-2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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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락원’을 쓴 영국의 대시인 ‘존 밀턴’은 노인이 걸리기가 가장 쉬운 병은 탐욕이라 했다.

노욕을 경계하는 경구로 이보다 명쾌한 건 없다.

아집이 지혜를 대신하고 뇌쇠가 총기(聰氣)를 대신할 때 노욕은 싹트기 시작한다.


나이가 반드시 지혜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불교는 나이를 먹을수록 욕심과 집착을 버려야 한다고 가르친다.

법구경(法句經)에는 “백발이 나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가 나이를 말한다”라고 적혀 있다. 지혜의 빛은 사라지고 분수 모르는 추한 욕심만 남은 백발은 나이를 헛되게 먹은 폐자이자 망령에 접어든 정향도 없고 지향도 없는 헛되이 산 인생이다.

나이 들면 자기 절제와 냉정함이 뒷받침 될 수 있는 품위 있고 고상하게 늙어가야 존대와 존경을 받을 수 있는 노인의 자화상이다.

지난번 나는 친북인사 강정구 교사라는 사람을 지면과 영상을 통해서 듣고 보고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재수없게 생긴 얼굴이라고.안경은 얼굴 전체를 덮었고 코는 주먹코에 웃을 때는 비웃는 듯한 웃음에 얼굴에 비해 눈은 실오라기 같고 코와 입은 얼굴 전체를 덮었고 이마는 대머리에 몇개만 남은 머리카락은 희끗희끗 흰머리와 팽이처럼 길쭉한 얼굴을 보면서 참으로 얼굴값을 하는구나 하고.

저 사람의 젊었을 때 모습은 과연 어떠했을까. 늙으면 다 저렇게 추해지는가 하고 나 자신을 돌이켜 보곤 했다.

그러나 기형적인 외모보다 생의 경륜과 지혜는 그 사람의 얼굴에서 그 사람의 마음을 찾아볼 수 있으며 행동과 선행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받을 수 있다.


외모는 하나의 작품일 뿐 그 사람의 평가는 아니다.

요즘 뉴욕한인사회는 노인단체들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모두 노인 복지사업을 위한다는 봉사단체들이다.

젊어서 못다한 봉사를 늙어서나마 한인사회를 위해 봉사하겠다는데 그 누가 뭐라 하겠는가. 참으로 존경과 찬사를 보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봉사가 자신의 명예와 자신의 위상이 앞서있다면 그것은 봉사가 아니라 기만이다.

언론을 의식하면서 작던 크던 일한답시고 얼굴이나 내밀면서 자신의 관리에 치중하는 모습은 시대착오적인 아집이며 이것은 인적천상의 대상이며 노인이라는 기득권으로 뭇사람들로부터 대우나 받기 위한 ‘포퓰리즘’적 쇼맨십의 발상이다.

노욕에는 그 종류도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노출되어 눈에 띄는 것은 명예욕과 돈 욕심, 그리고 자식 욕심, 이 세가지는 노욕의 대표적인 삼욕(三慾)이다. 우리 한인사회는 이 삼욕을 지혜롭게 잘 조화를 이룬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깔끔한 자기 관리로 보기만 해도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인생에 조용히 이루어놓은 전문분야의 봉사활동을 회고록 형태의 출판기념회를 갖는다든가, 어떤 단체이든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조용히 봉사하는 사람, 모든 실력의 소유자인데도 항상 제 2인자로 묵묵히 봉사하는 사람, 젊어 못배운 것을 늙어 보충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많이 하면서 협조해주는 사람. 또 미운 소리, 우는 소리, 군소리 하지 않고 남의 일에 칭찬만 해주는 사람, 이기려 않고 항상 져주는 사람, 참으로 노년을 훌륭히 보내는 맑은 정신과 푸른 지혜를 ‘실사구사’하는 본받아야 할 노인들이 많이 있다.

실과나무에 열리는 실과의 그 감미로운 맛과 향취처럼 우리내 인생 비록 향취는 사라져도 대지위자양에는 우리의 흔적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또한 서천(西天)에 비친 황홀한 노을빛처럼 곱고 고상하게 늙어가는 일이 우리 노인들의 마지막 할 일이다.

노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나이를 헛되이 먹은 덜 분화된 인생이다.

오 해 영(뉴욕상록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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